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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칼럼> 근로시간 단축, 해외 건설현장은 어쩌나
  •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 승인 2018.06.0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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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을 단축하라고 하는 것은 ‘뛰지 말고 걸으라는 것’입니다.”

지난달 동남아시아의 한 건설 현장에서 만난 한국의 대형건설사 임원은 7월로 예정된 근로시간 단축(주 68시간→ 52시간)에 대해 걱정이 큰 모습이었다. 다른 외국 경쟁사들은 신규 사업 수주나 공사 조기 완공을 위해 더 빨리 뛰려고 하는데, 한국만 유독 천천히 걸으라며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는 뜻이다.

잠시 둘러본 현장 곳곳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땅을 고르고, 기본적인 시설물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따로 설치된 고층 전망대에 올라야 현장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근로자는 2교대로 24시간 쉬지 않고 투입된다. 그렇게 해도 현재 약간 늦어진 공기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간당간당한 상태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7월부터는 본사 소속 직원들이 한 주에 52시간밖에 근무할 수 없게 된다. 하루에 몇 시간씩만 공사를 끊어서 하거나, 본사에서 더 많은 직원을 받아 2교대를 계속해야 한다. 2교대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52시간을 맞추려면 추가 인건비 등 100억원 정도를 사업비에 더 투입하면 된다고 한 직원은 설명했다. 

“법이 바뀌었으니 공기를 좀 늘려달라고 발주처에 부탁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러는 시간에 차라리 땅 보고 다니다 100원짜리 하나 줍는 게 이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 법이 바뀐 것을 이유로 댄들 발주처가 콧방귀도 안 뀐다는 소리였다.

그 임원은 “근로시간 단축 취지에는 동감하는데, 해외현장의 특수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밀어붙이면 기업만 죽어난다”고 한탄했다. 이 임원은 30여년 전 아프리카의 첫 현장에 나가 4개월에 한 번씩 휴가를 받으며 일했다고 했다. 이후로도 중동, 아시아 등 해외현장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이역만리 타국에서 선배 건설 역군들이 일궈놓은 빠르면서도 완벽한 공사 수행이라는 한국식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장황하게 해외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이유는 아직 이들 근로시간 단축 대책이나 보완책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서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건설사가 발주처에 공사기간 연장과 계약금액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국내 현장에 한정된 대책이다. 해외현장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2년차가 되니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내팽개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정부가 경기를 판단하려고 중점적으로 보는 10대 경제 지표 중 9개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통계청이 5월29일 경제가 ‘상승, 둔화, 하강, 회복’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분석한 ‘경기순환시계’에 따르면 현재의 경기 국면은 소매 판매를 제외한 9개 분야에서 둔화나 하강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고용이 반전할까. 아니다. 52시간에 딱 맞춰‘빡세게’ 일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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