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위치·시기·품질별로
 원가 구성이 천차만별이라
 실제 생산비용을 알기 어렵다
 원가공개는 되레 시장을 왜곡한다
 정부가 집값 인하를 겨냥한다면
 대체상품 공급이 바람직하다”

IT 기술의 발달로 생각과 태도를 훤히 드러낼 수 있는 옷이 개발되면 얼마나 팔릴까? 수사기관이나 세무당국 또는 시험 감독기관은 예약 주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나 뇌지문 탐지법 등은 국가에 따라 허용 여부와 증거 인정 범위가 다르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아직 보편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실효성과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부터 공공 택지의 공동주택 분양원가 공개 확대 정책이 시행됐다. 원가 공개 항목이 기존 12개에서 62개로 확대됐다. 정부는 삶의 기본인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분양가 하향 조정을 통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 목표를 부각시켰다.

주택가격 급등에 따른 개인적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는 병리현상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의식에는 국민 대부분이 공감한다. 하지만 공공택지 개발이라 하더라도 민간 건설기업의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하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자충수이다.

업체와 일부 전문가가 주장하는 주택공급 위축의 우려감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가지성(不可知性)이다. 2011년 정부는 정유사에게 휘발유 원가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결국 무산됐고 ‘알뜰주유소’로 가격 경쟁을 유도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이동통신 3사에 대해 통신요금 원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제기 7년 만에 확정됐으나 공개 대상은 2005~2011년 과거 실적이었다. 그런데 분양원가처럼 생산하지도 않은 상품의 세부 항목별 생산비용을 제시하라는 것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다.

더욱이 공동주택은 외관과 내부 구조가 유사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각 사업별로 개별성이 크다. 즉 대량 반복 생산에 의한 상품의 생산원가 구성과는 달리 공동주택은 위치별, 시기별, 규모별, 품질수준별, 브랜드별 건설원가와 이윤 구성이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추정치에 의한 사전적인 분양원가 구성으로는 정부도 기업도 실제 생산비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기업이 전략적으로 분양원가를 실제보다 과다 또는 과소 책정할 유인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

분양원가의 공개 확대 정책은 또 다른 방식으로 주택시장을 가격과 품질의 측면에서 왜곡시킬 수 있다. 먼저 2007년 첫 도입 시기처럼 단기적으로는 분양가 인하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 가격 인하의 기대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분양가와 매매가격의 격차만 커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로 주택을 구입했다고 해서 매도할 때에도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만일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인하의 강한 압력 수단이 된다면 주택 공급업체는 주택의 품질보다는 가격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원도급자는 협력업체에 원가 부담을 전가시킬 소지도 커진다. 품질 향상을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다양한 주거공간의 질적 발전이 제한될 수도 있다. 혁신적인 주택문화 창출의 유인력이 저하될 것이다.

주택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증가하면 주택 공급자가 이윤을 증대시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생산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대로 주택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증가하면 소비자가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해당 상품의 소비 만족도가 가격에 비례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의 본질은 가격 자체의 높낮이를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격 높낮이에 대응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

정부가 주택가격 인하를 겨냥해 분양가를 낮추고자 한다면 기업의 원가 공개 규제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경쟁적인 대체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와 공기업이 동일한 품질의 주택을 민간기업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거나 동일한 가격으로 품질이 우수한 주택을 공급한다면 주택시장에 경쟁효과를 통한 가격 인하가 효과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분양원가의 세부 항목별 공개 확대는 우리 사회와 경제를 더욱 포용적이고 공정한 단계로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기회주의적인 갈등과 마찰을 증폭시킬 소지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주택 가격이 일부 투기적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과정적 폐단이라면 정부의 규제정책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는 것은 구조적 폐단이다. 가격은 규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적응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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