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칼럼>‘대못 규제’ 지하안전영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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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칼럼>‘대못 규제’ 지하안전영향평가
  • 전범주 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19.04.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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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m 이상을 굴착하는 신축건물 공사는 2018년 1월부터 지하안전영향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허들을 넘지 못하면 땅을 파지 못하고, 대출이나 분양 등 착공 이후 일정이 올스톱된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주변에서 싱크홀(지반 침하)이 발견되면서 관련법이 만들어졌다. 정부규제는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지하안전영향평가는 지반침하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고 지하수를 보호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턱없이 부족한 인허가 인력과 99%에 달하는 퇴짜(보완) 처분으로 수도권의 건설업자들이 반 년 이상 착공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사실 기자가 지하안전영향평가에 대한 부동산 시행사들의 원성을 접한 건 지난해 봄이다. “새로운 영향평가가 하나 더 생겼는데, 다른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이것 때문에 석 달째 착공을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또 “서울 전체를 국토교통부 공무원 2명이 다 맡아서 한다고 하더라. 너무 바빠서 전화도 안되더라”는 믿기 힘든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미리 준비를 안 해둔 ‘업자들의 넋두리’ 정도로 넘겼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시행사들 사이에서 지하안전영향평가는 부동산업계의 ‘최악 규제’로 중지가 모였다. 수도권에서 건물을 짓는 건설업자 중에 이 허들에서 고꾸라지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서울시 송파구에서 오피스텔을 짓는 한 시행사 대표는 지하안전영향평가에서 반 년 이상 시간을 들였지만 아직도 통과를 못하고 있었다. 땅 매입과 건설비 명목으로 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착공을 할 수 없어 매달 금융비용과 용역비용이 4억원씩 나갔다. 영세업자가 이자비용으로만 20억원 이상 나가니 부도 위기까지 느낀다고 했다.

지하안전영향평가가 시행된 지 15개월이 지나서 본격 취재에 돌입하게 된 이유다. 실제로 서울과 경기, 인천을 총괄하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건설관리과 직원 7명이 지난해 497건의 평가서를 접수해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홈페이지에 공지된 이들의 업무분담에 따르면 공무원 2명이 서울 전역을 담당하고, 경기 3명, 인천 1명이 배정돼 있다. “서울 전체를 공무원 2명이 맡더라”는 황당한 얘기가 사실이었다. 또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보완지시 사례가 98~99%에 이른다는 점도 인정했다. 시행 이후 1년이 넘어서도 99%가 퇴짜 맞는 제도라면, 그 자체가 문제 아닐까.

그나마 국토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개선 논의를 본격 시작했다는 점은 다행이다. 지방국토관리청은 그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한국시설안전공단에 외부 검토 의뢰를 맡겨왔는데, 이 기관을 늘려 병목현상을 줄이기로 했다. 또 표준메뉴얼을 만들어 보완비율을 현재 99%에서 50%대로 낮추겠다고 한다.

나라와 공무원에게 규제는 힘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제를 만들고 키우는 이유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성숙될수록 규제는 줄고 자율성은 높아져야 한다. 시민과 기업의 역량이 정부를 앞지르기 때문이다. 지하안전영향평가의 제도개선 시도가 규제일변도 부동산정책의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범주 매일경제 기자] bomj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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