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하도급 상대 갑질이 습벽화 된 기업들에 대한 벌칙 제도가 10년, 20년 이상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문제가 되자 “관련 부처 간 법령 해석의 차이 때문”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제도 이행이 제대로 안된 데 대한 변명치고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이 벌칙은 하도급법을 위반한 기업에게 벌점을 매기도록 한 뒤 벌점이 쌓여 일정한 선을 넘으면 입찰참가제한이나 영업정지까지 내리도록 하는 조치이다. 하도급 기업들에 대한 원도급들의 갑질 행태들이 도를 넘는데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다보니 벌점 누적제까지 도입했던 것이다. 가령 경고나 시정명령, 과징금, 고발 등 제재 종류별로 벌점을 부과해 3년 단위로 누적 벌점이 5점을 넘기면 입찰참가제한 조치를, 10점을 넘기면 영업정지 조치까지 내리도록 하는 식이다.

하지만 집행의 칼날은 무뎠다. 벌점 감경제라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을 상습 위반한 ‘벌점 과다’ 기업들은 그때마다 벌점 감경 덕분에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언론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마침내 지난 달 6일 한일중공업이 영업정지 처분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벌점제 영업정지 항목이 생긴 지 무려 24년 만에 첫 제재였다니 어이가 없다.

최근에는 입찰참여 제한제도 도입 10년 만에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공공입찰 퇴출 대상으로 지정된 업체가 무려 100억원이 넘는 사업을 따내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 김병욱 의원에 따르면 포스코 계열 정보기술(IT)·엔지니어링 업체인 포스코ICT는 올 초 조달청의 나라장터 입찰을 통해 총 사업비 170억원의 ‘서울시 자동차 통행관리 통합 플랫폼 구축사업’을 수주했다. 이 회사는 부당특약과 대금 미지급, 지연이자 미지급 등의 상습적 하도급법 위반으로, 이번 수주를 받기 이미 1년 전에 공정위로부터 입찰제한 대상 지정을 받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조달청이 내놓은 답은 “해당 법령 자체가 모호해 제한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조항은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2항이다. 이 조항은 입찰참가자격 제한 대상을 ‘계약상대자, 입찰자 또는 전자조달시스템(나라장터)으로 견적서를 제출하는 자 중 부정당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조달청은 이 조항의 시제가 ‘현재형’으로, 공정위의 제한요청이 있던 당시 즉, 낙찰 1년 전에는 포스코ICT가 조달청 계약상대자가 아니어서 제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달청이 ‘현재형 시제’ 운운한 대목은 미루어 짐작컨대 ‘제출하는’이라는 문구로 보인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예컨대 법에 ‘도둑질을 하는 자를 처벌한다’고 돼 있으면 ‘현재 도둑질을 하고 있는 자’ 즉, 시제가 현재형인 사람만 처벌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도둑질을 이미 ‘한 자’는 과거형이라 함부로 처벌하기가 곤란하다는 의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기획재정부에서 관련 법령을 명확하게 고친다고 하니 지켜볼 따름이다. 공언대로 실천의지를 보여줄 것을 기대하면서 다만 법령 해석상 헷갈리지 않을 문구는 어떤 것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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