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건설업체 10곳 중 8곳이 부당한 갑질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다는 조사결과에 안타까움과 난감함이 교차한다. 본지가 창간 33주년(11월24일)을 맞아 한국공정거래평가원과 함께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110개 업체가 설문에 응해 이같이 답했다.

조사에서는 42개 업체(40%)가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들 업체는 전문적 검토 없이 주먹구구식 계약을 하거나 부당한 구두약속 및 대금감액 등 원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갑질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사업자에게 서류계약을 하자고 하면 “우리를 못 믿는 것이냐”라며 구두지시, 구두약속으로 대충 넘어간다고 한다. 준공기성을 지급할 때는 “다음 공사를 또 하도급 받으려면 이번에 조금 깎아주라”라는 식으로 부당 감액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처럼 전문건설업체 입장에서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눅이 들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라면 안타깝고도 분노할 일이다. 하지만 업체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미리 대처할 수 있는 데도 방임이나 나태로 인해 증거자료 하나 챙기지 못한 경우라면 난감할 따름이다. 변호사나 노무사들도 “입증자료가 없으면 도와주려 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고 소리도 손뼉을 쳐야 난다. 어느 한쪽만 하고, 상대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

하도급 전문업체들의 이런 속앓이와 애로에 마음이 통한 것일까.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매우 유용한 지원책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료제출명령제’를 하도급법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불공정거래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피해자의 신청으로 법위반 사업자의 자료를 제출토록 하는 제도이다. 피해자인 하도급업체가 억울한 일을 당해 분쟁이 생겨도 입증 자료가 없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한 조치이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법에는 도입이 됐으나 하도급법에는 아직까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 자체가 모순인 만큼 하루속히 하도급법에도 적용시키기를 기대한다.

도우려 해도 입증자료가 없어 도울 수 없는 경우는 막아야 한다. 웬만한 뺑소니사고도 요즘은 곳곳에 설치된 CCTV 덕분에 들통 날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런 게 바로 국가가 해줄 일이다. 하도급업체들이 능력의 한계 때문에, 혹은 원도급 눈치 보느라 제대로 된 입증자료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전제하에 정부가 이들을 도와주는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 마치 뺑소니 사건의 CCTV처럼 말이다. 갑질 피해업체가 억울함을 호소할 때 “증거자료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후진국적 무책임 행정의 표본이다.

업체들도 힘없고 눈치 보이면 녹음이라도 해야 한다. 하다못해 문자, 편지 형식으로라도 증거를 남겨야 한다. 감독 당국은 불공정 갑질 사례가 적발될 경우 이른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갑질도 문제지만 그 갑질에 대한 증거마저 원천적으로 틀어막으려는 행위는 가히 가중처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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