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상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금전이건 상관없다. 정책도 그렇다. 정책대행자들이 다 반대하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행정사무 민간위탁법 제정에 관한 얘기이다.

20대 국회인 2017년 4월에 발의돼 2년 반을 끌어오다가 자동폐기됐던 법안이다. 당연히 행정안전위원회 소위도 통과하지 못했었다. 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행정안전부가 부랴부랴 다시 이 법안을 마련했다.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목표와 의지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민간위탁기관 입장에서는 정부의 이런 태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행안부가 내세우는 법안 발의 배경은 세월호 사건이다. 취지는 민간위탁 업무의 부조리와 비리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별도의 총괄 정부조직을 만들어 일정 기간마다 공개입찰을 통해 위탁기관을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중앙 조직을 통해 수탁기관들을 일사불란하게 관리·감독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건설업 쪽은 다른 분야와 사정이 확연히 다르다. 예상되는 문제점 또한 훨씬 심각하다. 

첫째, ‘중복규제’와 ‘옥상옥’ 논란이다. 현재도 민간위탁은 관련 규정과 규칙 등에 의해 위탁을 준 부처나 기관으로부터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또 새로운 총괄 조직을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것은 규제 만능적 발상이다.

둘째, 자료의 연속성 및 특수성·전문성이 요구되는 위탁사무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우려가 크다. 건설단체들이 수행하고 있는 시공능력평가만 해도 3~10년 이상의 누적자료가 필요하다. 업무연속성과 공사현장 등의 전문지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셋째, 행안부의 시대적 과제인 분권행정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중앙집권식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를 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정부 업무를 민간에 위탁해야 하는 마당에 거꾸로 가겠다는 것이다.

넷째, 위탁사무의 부조리나 비리는 대부분 민생 이권과 관련된 특정 조직의 일이다. 지금까지 공적 위탁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건실한 조직까지 흔들어 이중 삼중 통제하겠다는 것은 규제 과잉이다.

건설업계로서는 이 법안보다 오히려 더 시급하고 절실한 제도적 현안들이 있다. 우선 주 52시간 근로제 실시에 따른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 시행일 연기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하도급대금 압류 금지와 부당특약 원천 무효화,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 의무화 등의 법적 장치가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 도급(하도급)계약서에 직·간접비 등 대통령령 지정 항목이 기재되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 단체, 종사자들의 의견이다.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행정사무 민간위탁법안을 철회하고 각 사무에 필요한 별도의 개선조치들을 강구해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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