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는 시간이 오면 겸손해진다. 뒤돌아보게 된다. 조용히 떠오르는 단상은 늘 비슷하다. 겸손, 내려놓기, 성찰, 그런 것들이다. 

문득 계영배(戒盈杯)가 떠오른다. 글자 그대로 ‘채우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다. 채우는 것조차 경계할 정도인데 넘치는 것은 어떨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과’ 말이다. 욕심, 말, 행동, 정책이 모두 해당한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일단 지르고 본다. 실력은 역부족인데도 욕심이 과하면 무리수를 두게 된다. 사고는 그럴 때 터진다. 설화(舌禍)나 막말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꽉 차지 않은 모자람이 오히려 나은 경우가 많다. 때로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하기까지 하다. 제주의 돌담이 폭풍에도 견디는 것은 화산석의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어 표현 중에 ‘Less is more’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적은 것이 많은 것’ 정도로 해석된다. 절제와 자족에서 품격이 살아난다. 선을 넘지 않는 지혜가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늘 넘치려 한다. 도를 넘어 자만과 교만에 빠진다. 만족할 줄 모르고 자제할 줄 모른다. 작은 소망이 욕심으로, 욕심은 다시 탐욕으로, 끝없이 번져간다. 피 맛을 본 하이에나처럼. 늑대처럼.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돼지처럼. 마치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듯 절대쾌락을 좇아 돌진한다. 결과는 심판으로 이어진다.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이라고 했던가.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도 (옳고 그름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왜 사니?”

2020은 앞뒤 두 자리 숫자가 같은, 혹은 반복되는 해였다. 101년 만에 찾아왔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삶을 새로운 ‘전과 후’로 바꾸는 일대 변혁이 있긴 했다. 달갑지 않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등장이었다. 올 한 해는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 우한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연결망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마치 외계인이나 악령의 습격으로 비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의 계시나 경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세상이 다시 뿌옇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잠시 잊고 지냈던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앞날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코로나 때문으로 돌릴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와 별개로 우리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망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장밋빛 청사진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비한 플랜B, 플랜C를 만들어놔야 한다.

지난 가을 ‘광화문 글판’에는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글귀(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 가사 중)가 걸려 있었다. 뒤돌아보면서 침묵하고 관조하면서,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기도하면서 한 해를 마감한다. 굿바이 2020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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