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가계부채 대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31일 취임 이후 줄곧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6%대 관리’를 외쳤다. 1800조원을 웃돌며 폭증하는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가계대출 폭증의 주범으로 꼽히는 전세대출에 대해선 규제 입장을 보여왔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대출 총량에 여유가 없자 전세대출 신청을 받지 않는 극약 처방까지 썼다. ‘실수요자인 전세세입자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그간의 불문율을 깰 정도로 금융당국 입장은 확고했다.

하지만 전세 수요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눈치를 보던 당국은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거들자 금융위는 전세대출을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중단했던 전세대출 신청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지만 금융위는 같은날 5대 시중은행을 불러 “전세대출을 총량에서 제외하면 발생할 수 있는 가계부채 증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라”고 주문했고, 다음날 시중은행들은 전세대출 규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전세보증금 증액 부분만 전세대출을 해 주고, 잔금일 이후에는 대출 신청을 아예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개인별 총부채상환비율(DSR) 규제 확대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위험 수위로 치솟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감안하면 가계대출 억제 조치는 바람직하다. 유동성을 줄이겠다는 정책 분위기 변화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일어날 경제적 충격은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는 수개월 전부터 전 세계를 향해 ‘테이퍼링(자산매입축소)’을 하겠다고 구두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와 내년 금리인상 가능성을 계속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가계부채 문제는 국내 주택시장과 강하게 맞물리는 만큼 금융당국의 정책 실행은 아쉬운 측면이 많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셋값 상승 등이 우려되는 시장을 들쑤셨기 때문이다. 대출강화 조치로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 대신 반전세나 월세를 택한 세입자가 계약 조정을 요청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세대출 거절로 계약이 파기되면서 새로 전셋집을 구하게 된 이들의 피해도 상당하다. 

세입자를 새로 구해야 하는 집주인의 입장에서도 시간과 기회비용을 잃었다. 시장에서 오르내리는 DSR 조기 규제는 경제력이 약한 2030세대에겐 직격탄이 된다는 우려도 계속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조처는 매물 잠김 비판을 받고 지난 7월 폐기했다. 1가구 1주택 종부세 기준 역시 희한한 논리를 앞세워 공시가격 상위 2%를 추진하다 11억원으로 조정됐다. 양도세 비과세 기준 역시 9억에서 12억원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만 하고는 정작 법안처리는 미뤄 시장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갈팡질팡 정부를 국민들은 믿기 어렵다. 임기말 레임덕에 직면한 대통령도, 대선에 정신이 팔린 여당 야당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 탓에 생긴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 하락,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에너지 및 물류대란 등 듣기만 해도 어려운 과제를 잔뜩 안고 있다. 서민들의 불안 심리는 누가 잠재울 수 있을지 걱정스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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