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건설업계의 ‘밑지는 공사 블랙홀’이 길어지면서 이를 극복해낼 대책이 시급하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우주 양자물리학 용어이다. 지금 건설업계가 자잿값 폭등 및 장기화로 인해 적자 수렁에 빠진 상황을 빗댄 말이다.

물건을 팔면 팔수록,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면 사업을 접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업을 하다가 손해를 볼 때도 있고, 다시 여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특히 손해의 원인이 국제 분쟁과 같은 외부요인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건설자잿값 대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장기화가 직접적 원인임이 분명하다.

그런 사정을 다 알면서도 현 상황은 너무 암울하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원자잿값과 건설자잿값 상승으로 인한 공사단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전문건설업체는 최대 ?11%, 종합건설업체는 ?8%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영업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이판사판 생존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상생협력은커녕 파업과 공기연장 등으로 사태가 악화하는 것은 공멸을 자초하는 길이다. 반면 국내 대형 제강회사들은 올 1분기 영업이익 증가율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해 씁쓸한 대조를 이뤘다.

지난 5월4일 경기 성남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서 열린 ‘신흥1구역’ 재개발 조합 주최 사업설명회에는 애초 오기로 했던 대형건설사들이 단 한 곳도 오지 않았다.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요지에 아파트 4183가구를 짓는 알짜배기 재개발 사업이었다. 성남의 ‘수진1구역’ 재개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2918가구를 짓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 재개발 조합 역시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 시공사 입찰공고를 냈지만 참여한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울의 ‘둔촌주공’과 ‘대조1구역’ 등은 이미 시공계약을 맺었음에도 불어나는 공사비를 확정하지 못해 지연되는 사례들이다. 특히 민간공사의 경우 물가변동 계약금액 조정 배제 특약이 수주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돼 있는 등 물가 변동에 대응할 안전장치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2022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건설투자 전망치를 ?1.3%로 제시했다. 작년 11월 전망한 2.4%보다 무려 4% 포인트 가까이 하향 조정된 수치이다. 원인은 당연히 건설자잿값 급등에 따른 건설비용 상승이다.

공적인 일을 함께 수행하면서도 때때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이익단체들이 전문건설과 종합건설이다. 원·하도급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주판알을 튕기며 영업 전선에서 겨뤄야 할 때보다 서로 손잡고 위기를 돌파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지금이 바로 후자의 경우다. 정부도 당연히 나서서 다양한 원자재 수급 대책과 공사비 조정 의무화, 세금 구제 등으로 건설업계의 셧다운, 도산사태를 막아야 할 때이다. 건설업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무너진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