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만 없지 ‘전쟁’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최악 상황으로 치닫는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5월 소비자 물가가 5%대를 찍을 것이라고 한다. 1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체감 물가는 더 높다. 마트에 가서 식재료 몇 개를 고르면 금방 10만원이 넘는다. 3만원어치 기름을 넣으면 자동차 연료 게이지가 한 칸밖에 안 올라간다.

반주 한잔 하고 싶어도 1병에 5000원으로 뛴 가격이 부담이다. 고단한 코로나19 터널을 터벅터벅 걷다 겨우 빛을 보나했더니 이젠 물가와의 전쟁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20일 만인 5월30일 3조1000억원 규모의 긴급민생안정대책을 마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석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잿값이 다락같이 오르는 현실에 비춰보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부 대책은 주로 세금을 깎는 방식으로 생활비와 생계비, 주거부담을 덜어주는 게 핵심이다. 이런 대책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뛰는 물가가 잡힐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세금을 깎아주는 방법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휩쓰는 물가상승은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변수 탓이 크다. 자원 빈국에,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로서는 더더욱 속수무책이다.

한국이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악재인 스태그플레이션 길목에 서 있다는 분석도 많이 언급된다.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긴급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한 날 윤석열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언급한 건 다행이다.

돌아보면 정권 초반이나 경제위기가 왔을 때 역대 대통령은 하나같이 규제개혁 카드를 빼들었다. 윤 대통령이 규제에 자주 빗대는 ‘모래주머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봇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손톱 밑 가시’로 불렀던 것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규제 샌드박스’를 홍보했다. 

윤 대통령의 규제 개혁은 다른 대통령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 그는 “우선 법령과 관계없는 행정규제 같은 ‘그림자 규제’를 확실하게 개선하고, 법령 개선이 필요한 것 중에 대통령령과 부령으로 할 수 있는 규제들은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뜻대로 법 고치는 게 불가능하니 시행령 등 정부 선에서 처리가 가능한 방안을 찾아본다는 의미다. 

이래서는 임시방편, 반쪽짜리 규제 개혁밖에 할 수 없다. 피해가려 말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 나라 경제가 점점 활력을 잃어간다. 여기저기 눈치만 보다가는 고물가에 경기는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야 한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수단은 총동원해야 할 때다. 

민간 혁신을 지원하고 이에 대한 걸림돌인 규제를 없애는 게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마땅한 경제 회생 카드가 없는 이때 규제 개혁은 돈 안들이고 성장 동력을 키우는 훌륭한 수단이다. 윤석열 정부의 화끈한 규제 혁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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