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온 한 지인이 최근 답답함을 호소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높은 청약 점수를 갖게 됐지만, 서울에서 새 아파트 분양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기다렸던 둔촌주공 재건축인 둔촌 올림픽파크 애비뉴포레의 분양 일정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 만기다. 올해 연말이다. 이미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 사용했다. 집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전셋값을 올려줘야 할 상황이다. 주변 시세를 감안하면 3억~4억원 정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대출도 쉽지 않고 금리도 무섭다. 긴 세입자 생활을 청산하고, 내 집 마련하려는 계획이 좌초할 위기다.

주택시장이 꼬일 대로 꼬였다. 새 아파트 공급은 서울의 경우 사실상 멈췄다. 원자잿값 상승으로 재건축조합이 시공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양을 미룬 단지들도 있다. 새 아파트 공급이 지속적,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에서 수요 공급 질서가 흔들린다. 

금리인상, 가계대출, 치솟는 원자잿값, 높은 집값, 부담스러운 전셋값, 멈춰버린 분양, 복잡한 규제들까지. 열거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들이 모두 현실화한 상황이다. 난해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시장은 왜곡될 것이고 수요자와 건설업계 모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먼저 분양 시계를 다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분양가상한제 개편방안을 이달 내에 발표할 예정이다. 분양가에 원자잿값 상승분, 정비사업 이주비 등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시공사와 조합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점을 찾는 게 숙제다.

기본형 건축비 추가 상승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면 주택 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 무주택자들에게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목돈을 대출해준 뒤 장기간에 걸쳐 상환하도록 하는 등 대출 기회를 열어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두 번째로 재건축, 재개발, 리모델링 등 새 아파트 공급 기반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새 정부는 이전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새 아파트가 꾸준히 공급될 수 있도록 노후주택의 재건축, 재개발, 리모델링 규제를 합리적인 선에서 풀어줘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신통기획·모아주택·모아타운 등도 수요자들의 불안심리를 덜어주는 긍정적인 주택공급 정책이다. 주택시장의 열기가 전보다 가라앉은 지금이 오히려 이런 개발 사업을 추진할 적기다. 이와 함께 이전 정부에서 추진해온 3기 신도시와 광역 교통망 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세 번째로 ‘임대차 3법’ 시행 2년 차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전세 세입자에 대한 구제책 마련이 시급하다. 당장 전·월세 물량을 확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임대인에게 임대주택 공급 시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전세금 인상분 대출에만 정부와 지자체가 대출금을 일부 보전해주는 형식으로 금리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경기는 확장과 수축 과정을 반복한다. 과열과 침체 모두 과도해서 좋을 게 없다. 경제에서 ‘골디락스(Goldilocks)’란 말이 있다.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심리적, 물리적 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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