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채우는 건축물을 두고 몇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 첫째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물이다. 건축물이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그 공간을 오래도록 기억나게 하는 경우다. 수원 화성 안에 있는 ‘낙남헌’이 그 예다. 정조의 효심을 잘 나타내는 그 건축물은 수원을 효의 도시로 기억하게 해준다. 건축물이 공간의 의미를 만드는 경우를 두고 건축물의 능동성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의미 없이 텅 비어있을 공간에 의미를 꽉 채워주었으니 능동적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공간에 기생해 사는 건축물이다. 역세권이라든지, 강남 최고의 학군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건축물이 그에 속한다. 고궁 옆에 붙어서 ‘00궁의 아침’이니 하는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없으니 화려한 명칭으로 그를 메우려 한다. 기상천외한 이름의 아파트가 등장하는 그런 까닭이다. 이처럼 공간에 기대어 사는 이런 건축물을 두고는 수동적이라 불러 마땅하다. 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니 그렇게 부를 도리밖에 없다.

세 번째 범주로 공간을 압도하는 건축물을 들 수 있다. 주변 공간을 모두 흡입해버려 스스로가 공간이 되고, 랜드마크가 되는 경우다. 이런 건축물은 스펙터클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123층의 위용을 자랑하며 서울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그런 건축물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건축물은 능동성이나 수동성이라는 말과는 상당한 거리를 둔다. 압도, 경이, 세계 5위 등의 권력 용어가 뒤따른다. 건축물이 추앙의 대상이 되고, 권력을 쥔 주체가 돼 주변은 대상화될 뿐이다. 이 경우 건축물을 권력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과거 대중매체가 건축물을 소개할 때는 주로 두 번째, 세 번째 범주에 관심을 쏟았다. 온갖 기능을 다 갖추고 새롭게 사람을 놀랍게 하면서 등장한 건물은 대중매체가 즐겨 재현했다. 높은 빌딩, 영리한 빌딩, 유일무이한 건축물 등의 영상은 건축물 소개 프로그램에서 단골 대접을 받았다. 주변에 공원이 있어 좋다거나, 학군이 좋다거나 교통이 편리하다는 말과 함께 대중매체가 소개한 건축물도 참으로 많았다. 아파트 소개에서는 상투적이랄 만큼 그 같은 수동적 건축물 소개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대중매체 내의 그 같은 편향성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점차 낡은 얘기가 됨을 피부로 느낀다.

젊은 층이 열광하는 새로운 일상 매체가 된 유튜브 등에 있는 건축물 소개 채널은 전에 없이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전원주택, 값싼 주택, 도심 내 주택, 환경친화 주택, 귀농주택, 재생건물 등을 다루는 채널의 숫자가 늘고 있다. 능동적 건축물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짓는 모습을 담기까지 한다. 능동성을 넘어 적극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변화를 대중매체의 시대에서 새로운 매체의 시대가 도래한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건축물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옳을 듯하다.

건축물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 변화는 환영할 일이다. 특히 첫 번째 범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음에 주목한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건축물이 주변과 어울리는 일이고 더 나아가 주변, 건축물과 사람이 한데 더불어 사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기억과 역사를 지워 건축물만이 우뚝 서버리는 독단적 건축술, 화려한 이름이나 주변 조건에 파묻혀 개성 없이 존재하는 익명적 건축술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그 변화의 폭이 한정적임을 잊진 말아야 한다. 유튜브 등에서도 여전히 두 번째와 세 번째 범주가 더 압도적이다. 다양함과 능동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며 아직은 징후적이라며 조심스레 말할 수밖에 없다.

건축, 건축물, 건축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사회 내 여러 제도가 그 변화를 좀 더 밀어주길 희망한다. 도시재생책, 도시 개발 정책, 세금 정책 등이 나서서 그 변화에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 인식 전환을 꾀하며 시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그 변화를 반기면서 공명하길 요청한다. 한정적 변화를 획기적인 변화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공간을 구성해 일상적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문화예술적 작업이다. 그 공간 안에서 아늑한 삶을 꾸려가는 일을 감안한다면 건축은 곧 사회복지사업이기도 하다. 그처럼 중요한 문화예술, 사회복지사업에 사회 내 온갖 제도가 다 참여하는 일만큼 시급하고 소중한 일이 또 있을까. 이미 꿈틀대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온 사회가 인식하고 반응하길 요청한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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