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카타르 도하공항을 빠져나간 직후부터 곳곳에서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는 11월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과 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체감온도가 40도를 훌쩍 넘는 열기 속에서 국내 건설사 직원들은 바삐 현장을 지휘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임원은 “구간별 교통통제까지 함께 해야 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난도가 높다”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까다로운 공사를 차질 없이 수행하니 한국 건설사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치열하게 쌓은 평판은 신규 사업 수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 수주에 적극적이었다. 대우건설은 당시 5조원 규모의 나이지리아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건설 사업을 따냈다. 또 이라크에서 800억원대 알 포 신항만 도로공사와 1000억원대 침매터널 제작장 조성공사 계약을 연달아 체결했다. 베트남에선 행정복합도시인 ‘스타레이크 시티’를 조성했다.

삼성물산도 같은 해 9월 방글라데시에서 7000억원대 대형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도네시아에서 4조6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현대건설이 그해 3월 ‘사막의 장미’로 불리는 카타르 대표 건축·문화 랜드마크인 ‘카타르 국립박물관’을 완공했다.

2년여의 세월이 흐른 현재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실적은 믿기 힘들 정도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 건설 수주액은 115억 달러다. 2006년(85억 달러) 이후 16년 만의 최저치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이유는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도전과제를 헤쳐나가야 하는 해외 사업을 피했다. 이보다 공사가 수월하고 수익성도 좋은 국내 아파트 건설에 무게를 뒀다.

물론 해외 사업이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다. 2010년대 초반 중동지역 플랜트 사업을 앞다퉈 따낸 기업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과 손실에 주저앉았다. ‘수주 지상주의’에 따른 저가 수주 경쟁은 어닝쇼크로 이어졌고, 수년간 건설사들에 고통을 안겼다.

당시 건설사들은 ‘수주보다 수익’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국내 주택·건축 영업에 눈을 돌렸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과 공공택지 개발, 공공기관 발주 공사에 매달렸다. 최근 몇 년간의 주택시장 호황은 그간의 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 역대급 호재였다.

그런데 국내 주택시장에서도 냉기가 불고 있다. 코로나발 확장재정이 마침표를 찍고 금리가 치솟았다. 경기가 빨간불을 켰다. 인건비, 원자잿값도 고공행진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국내 주택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주택시장도 한계가 보인다. 인구가 지속해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해외시장을 외면하다간 국내에서 제한된 주택 공급량을 두고 치킨게임을 벌이는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다. ‘돈 되는’ 해외시장을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다.

다행히 정부도 최근 건설업계의 해외 시장 확대를 지원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의 법정자본금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은 전쟁터다. 중국과 인도 건설사는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했다. 이들을 제치고 사업을 따낸 후에도 발주사들의 까다로운 설계·기술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

한바탕 내홍을 치른 건설사들도 이제 무엇을 수주해야 할지 판별하는 눈을 가졌을 것이다. 보다 많은 건설사가 다시금 ‘중동신화’의 아성을 품고 수주전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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