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최근 전문건설업계가 조달청의 규제 개선 공모에 몇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조달청이 자발적으로 공모해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쳐보겠다고 의지를 보여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추려서 조달청에 제출한 규제 개선 건의항목들을 보면 ‘이런 게 아직도?’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비상식적인 규정들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를 보면, 발주기관이 전자조달시스템(나라장터 등)을 통해 설계도면 등 설계서를 게재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전자정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코로나19로 전 산업분야의 언택트(비접촉) 문화가 일상화됐는데도 설계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입찰참여자가 일일이 발주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발주자가 지방일 때는 해당 지자체까지 직접 가야 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 설계서 검토를 충분하게 하지 못한 건설업체가 낙찰 후 공사비 부족 상황을 겪게 된다.

이와 함께 100억원 이상 종합심사낙찰제 대상공사는 현장설명 시 입찰참가자에게 입찰금액 산정자료를 교부하고 있으나, 중소건설업체가 참여하는 100억원 미만 적격심사 대상공사는 기초금액 산출내역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인력이 부족한 중소업체가 발주기관이 그나마 공개한 물량내역서로 기초금액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품셈·표준시장단가 및 시중노임단가 등을 자체적으로 조사·분석·검토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경험 부족으로 계약체결 이후 공사비 부족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상대자(원도급사)와의 설계변경·ES(물가변동)·공기연장 등으로 계약금액 조정 시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공사금액을 조정해 지급한 후 15일 이내에 하수급인에게 공사금액 조정사유와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 문제는 계약금액 조정이 수반되지 않은 채 변경이 됐을 경우 발생한다고 한다. 하도급사의 변경은 일어났으나 원도급사의 전체 계약금액은 변동이 없는 경우 하도급사는 설계변경이나 공기연장 통보를 받지 못하고, 투입장비 및 인력 변경 등을 제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하도급변경 계약에도 애로를 겪는다.

국가계약법상 공공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은 자는 이의신청을 통해 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고, 이의신청 대상금액이 작년 7월부터 종합공사는 10억원 이상, 전문공사는 1억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발주기관에서 실수든 고의든 저가설계해 공사비가 부족한 경우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데도 낙찰업체는 소송을 제외하고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전무한 것이다.

모두 중소기업에게 특히 치명적인 비상식 규제다. 업체가 이런 상황들에 처했을 경우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낙찰받은 공사를 자기 자금을 투입해 완료하거나, 계약보증금이 귀속되고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착공 전에 공사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공조달에 참여한 건설업체들이 기대하는 상식적인 결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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