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知斧斫足)는 속담이 있다. 믿었으나 배신을 당했을 때 쓰는 속담이다. 건설업체들에게 공공공사는 ‘믿는 도끼’와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공공사도 공사비는 박하다고 한다. 특히 전문건설업체의 경우 저가 하도급을 방지하는 제도가 있다 해도 낙찰받은 공사비가 이윤을 크게 남길 정도는 아니라는 게 업체들의 전언이다. 즉 공사비만으로 따졌을 때는 옴치고 뛸 수 있는 여지가 적어 큰 이득(메리트)이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데도 전문건설업체들이 믿는 도끼로 받아들이는 건 공사대금을 못 받거나 늦게 받거나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해 이것저것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기본으로 깔고 가기에는 좋은 매출처이기 때문이다. 건설업체들 가운데는 공공공사 몇 건을 수주해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민간공사를 통해 덩치(볼륨)를 키우는 방식으로 회사를 성장시켜온 사례도 많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 업체가 큰 고통을 겪거나 심지어는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공공공사에서 원도급업체 요구로 추가공사를 이행했으나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업체가 도산 위기에 처했거나 수개월간 공사비를 못 받는 것은 물론 감리단 월례비와 휴가비를 요구당한 업체 대표가 목숨을 끊은 사례 등이다.

본지 취재결과, 발등이 찍히는 현장들의 공통점은 원하도급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공사에서 부당처우를 받을 때 약자인 하도급업체가 우선 기댈 곳은 발주기관이다. 발주기관은 원하도급을 비롯해 종합적인 현장 관리책임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모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고, 담당 공무원이 그랬다고 처벌을 제대로 받고 있지도 않아 불법·부당대우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고 업체들은 전하고 있다.

물론 수급인(원도급자)이 하도급 입찰 전에 설계도면, 공사기간, 물량내역서 등을 반드시 공개하고 발주기관은 하도급 내용을 게시토록 한 하도급공사 계약자료 공개 제도, 발주자가 원도급자와 계약 변경 시 이를 하도급자에게도 통보해 주도록 한 하수급인 통지제도 등 하도급자 보호를 위한 법 제도들이 엄연히 마련돼 있다. 하지만 처벌규정이 약하거나 없어 별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업체들을 더욱 열받게 하는 건 발주기관에 원도급사의 부당특약 등 불법·불공정 하도급 행태를 고발하면 발주 담당자 상당수가 “민법상의 사인 간의 계약이라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소송으로 가시라”고 답변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역시 민법에 있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상기시킨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란 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계약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리책임자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나 발등을 찍을 수 있는 무기인 도끼를 휘두르는 힘을 가진 자라면 더더욱 책임감을 갖고 도끼를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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