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건설업계 종사자들이 건설업의 특성 가운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항목이 하나 있다. 연말만 되면 자본금 기준을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넉 달까지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12월 말을 기준으로 앞뒤 두 달 동안 자본금을 맞춰 놓지 않으면 건설산업기본법상 등록기준 미달 평가를 받아 등록 취소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매년 확인했는데 지금은 등록담당 기관에서 임의로 확인한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그 시기에 그 자본금을 맞춰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따라서 연말만 되면 합법적으로든 어떻게든 자본금을 맞추기 위해 업체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건설기업은 제조업 등 다른 업종과는 달리 절대로 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적자를 내서 자본금을 까먹는 즉시 등록기준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시기를 정해 확인을 하니까 그때뿐이지만, 엄밀히 따져서 일 년 내내 건설기업은 흑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확인 시기가 종잡을 수 없게 돼 버렸다. 공사발주 기관들이 본인들이 발주한 공사에 입찰한 혹은 공사를 낙찰받은 건설업체가 등록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입찰 사전단속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인하는 그 당시 적자를 보고 있어서 자본금이 부족하든지, 기술자가 갑자기 퇴사해 부족하든지 하면 등록기준 미달 업체로 분류돼 심하면 입찰이 막히거나 낙찰 취소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이렇게 등록기준 미달로 판정받은 업체는 졸지에 ‘페이퍼컴퍼니’로 불리고, 업계에서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등록기준을 맞추지 못한 부적격기업과 페이퍼컴퍼니는 엄연히 다르지만 해당 조사기관이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 모두 구별 없이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경영을 해오다 일시적으로 이 기준을 못 맞췄다는 이유로 회사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논란에 법제처는 지난 5월3일 유권해석을 통해 발주기관들이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등록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건설사업자를 페이퍼컴퍼니로 규정한 것은 사회통념상 확립된 의미와 동떨어진 용어사용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페이퍼컴퍼니를 ‘형식상 서류의 회사형태만 존재하고, 회사로서의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로 판단(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7. 1. 선고 2015구합50108 판결 등)했다는 것도 덧붙여 기준 미달 업체와 페이퍼컴퍼니는 다르다고 꼬집은 것이다.

건설업체들은 대중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산업이기에 자격을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한 등록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무분별한 용어 혼용으로 피해가 막심하고, 자격을 회복해도 오명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건설업자’를 ‘건설사업자’로 바꿨지만 3년이 넘은 현재도 언론 등에서 여전히 건설업자로 호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가다, 3D산업, 토건족, 건설업자에 이어 페이퍼컴퍼니까지. 건설업에 낙인찍기는 더 이상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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