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의 통계 왜곡 의혹에 대해 조사에 나서 파장이 크다.

집값, 소득, 일자리 등 여러 분야에서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해 주요 통계 추출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 정부의 집값 통계가 논란이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2020년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근거로 “3년간 서울 집값이 11% 올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KB부동산 통계에선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52% 올랐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내놓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조차 34%에 달했다. 숫자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당시엔 단순히 논란 정도인 줄만 알았는데, ‘고의 왜곡’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대통령 눈치를 살피느라 집값이 덜 오른 지역의 가중치를 고의로 높이거나, 조사원의 조사 숫자를 임의로 입력한 거 아니냐는 의심이다.

소득 통계의 ‘시계열 단절 논란’도 느낌이 영 좋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직후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다. 하지만 2018년 1분기 하위 20% 소득은 오히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같은 내용의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황수경 통계청장이 갑자기 경질됐다. 후임 강신욱 청장이 취임한 후 조사 방식은 두 번이나 개편됐고, 소득분배 지표는 개선됐다.

국가 통계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통계를 기초로 정책을 만들고, 미래상도 전망한다. 왜곡된 통계는 그릇된 정책을 낳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런 말이 있다. “망하는 나라, 불투명한 정부일수록 통계를 ‘마사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통계 조작의 유혹에 빠진 사례는 많다. 그리스는 2000년 유로존 가입 기준을 맞추기 위해 연간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6%로 확 낮춰 발표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이 실사하니 실제 재정적자 규모는 13%가 넘었다. 국가 신인도가 땅에 떨어져 그리스는 부도 위기에 몰렸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독일이 주변 예상보다 더 고전한 데도 사연이 있었다. 동독은 공산국가 중에서는 경제와 기술 수준이 가장 높고 복지체제도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려져 왔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동독의 1989년 1인당 GDP는 9703달러였고 이전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02%였다. 같은 기간 서독의 2.66%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통일 이후 실상을 보니 동독 경제는 통계보다 훨씬 썩어 있었다. 한 푼도 없다던 외채가 200억 달러에 달해 매년 총 외화 수입의 62%를 외채이자 지불에 써야 했다. 동독의 경제상황은 통계를 통해 서독이 예상한 수치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만일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통계가 조작됐다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 나가서 정부의 ‘통계 마사지’ 유혹을 원천 봉쇄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한국은행처럼 통계청을 정부와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갖는 기관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할 때다. 통계가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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