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69시간제’가 ‘과로 사회’를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터무니없다. 근로자들에게 주당 69시간 노동을 강요한다는 식이다. 큰 오해다. 표현이 잘못돼 벌어진 일이다. ‘주69시간제’가 아니라 ‘근무시간제 개편’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정확히 지적하면, 근로자들에게 근무시간을 스스로 ‘최적화’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근무 공식이 있다. 대부분 월요일부터 금요일 그리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주당 최대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그 근무시간을 개편해보자는 취지다. 원하면 근무시간을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늘리는 대신 더 일한 만큼 휴가를 더 주자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대개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한다. 퇴근을 빨리하면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한국도 그런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문제는 선무당 사람 잡는 식의 선동이다. 정말 한국이 ‘과로 사회’가 될까봐 우려한다면 근무시간제 개편이 더 필요하다. 몰론 ‘과로 사회’는 안 된다. 그런데 정확히 짚자면 현재도 한국은 과로 사회이다. 이유는 업무가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일이 많아서다.

특히 서류가 너무 많다. 건설회사가 공공공사 입찰에 한 번 들어가려면 서류 업무가 더 힘들다. 제출 서류가 무려 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서류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서류는 그 업무가 위법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내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내용이 충분하지만 서류가 조금이라도 미진하면 문제가 커진다. 내용과 상관없이 위법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서류만 충분하면 내용이 전혀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용과 상관없이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은 내용보다 형식이다. 형식이 너무 강조되면 일의 내용도 보람도 없어진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빈둥거리고 누군가는 갑질 때문에 업무 외 일까지 한다. 그런 것이 과로다. 과로는 업무 비효율에 스트레스가 더해진 결과다. 

업무 비효율은 불량 시스템에서 나온다. 빈둥거리는 이들 속에서 누군가 홀로 부지런하면 그는 일을 두 번 하게 된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심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노조는 잘못 파악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더 큰 문제다. 그 상처는 자본가에게 받는 것이 아니다. 옆에서 노조 ‘줄’을 쥔 불량 노동자들에게서 받는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영화 ‘내부자’에 나오는 대사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모든 게 줄이고 빽이다.’ 부당해고도 문제지만 한국에선 연줄에 의한 ‘음서’ 채용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과로로 죽는 노동자들보다 상처 받아 자살한 노동자들이 더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상이라면 시장은 ‘유인’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국 노동시장은 ‘연줄’로 돌아간다. 타워크레인 기사 채용 문제의 시작이다. 노력할 유인이 없다. 연줄만 닿으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시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군가가 선심 쓰는 것이 아니다.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과거 어떤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고 생색을 냈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어려움은 알겠지만 엉터리 노동정책은 유인체계를 망가트려 더 큰 비극을 초래한다. 결국 비정규직 일자리들마저 사라지게 되고 그 경우 가장 큰 피해자들은 일자리가 당장 필요한 사람들이다.

올바른 유인체계는 별것이 아니다. 엄격한 상벌이다. 한국 노동시장은 반대다.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보다 눈치 빠르고 ‘줄’을 잘 찾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간다. 실력보다 처세다. 직장마다 빈둥거리며 ‘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유명 정치인들과 친분을 내세워 인사 청탁을 주고받는 이들도 많다. 어떤 이는 부정한 짓을 저질렀지만 ‘줄’을 통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기도 한다. 인사 원칙은 고무줄 잣대고 인사 고과는 엿장수 마음대로다. 그럴수록 근면한 이들의 근로 의욕이 떨어지고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들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결국 일을 ‘적당히’ 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 

노동개혁이 시급하다. 그 초점은 노동시장 시스템 회복이다. 근면한 근로자들이 연줄이 없어도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급여만큼 중요한 것이 근로자들의 정체감과 자존감이다. ‘주69시간제’를 놓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다. 문제는 근로의 양이 아니라 근로의 질이다. 그리고 원칙과 기준이다. 누군가는 보상 없이 일만 하고 누군가는 일도 없이 보상만 챙겨간다. 선진적인 근로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올바른 유인체계가 필요하다. 과로 사회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근면한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이 꼭 필요하다. 노동개혁의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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