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요양병원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에서 중대재해 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청 업체 대표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1월27일 법이 시행된 지 1년 3개월여 만에 나온 첫 판결이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대 부착과 작업계획서 작성 등 안전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검찰 공소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로 책임을 피해 온 원청 회사들의 관행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다는 경고와 다름없다.

중대재해법은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재계는 중대재해의 범위가 너무 넓고 사업주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고 있다며 반발했다. 실제로 이 법은 제도나 규정 미비, 감독 소홀 등 정부나 공공기관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 반면 노동계는 법 시행 이후에도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엄격한 법 적용을 요구한다.

이번 첫 판결에 대해서도 재계와 노동계 모두 만족하지 않는 눈치다. 경영계는 현장 책임자보다 원청업체 대표를 더 무겁게 처벌했다는 점에 반발 중이고, 노동계는 사망사고가 났는데도 집행유예에 그친 점에 반발했다.

이렇게 논란이 많지만 중대재해법이 우리 사회의 안전문화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지자체장들이 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안전보건관리자(CSO)를 선임하는 등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최근 성남 분당의 정자교 보행교가 무너져 1명이 숨진 사고에서 보듯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이 예방보다 지나치게 사업주 처벌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설업계의 충격은 상당하다. 이번 선고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앞으로 건설현장 사고에서 자유로울 건설사 대표는 사실상 거의 없다. 

이렇듯 처벌을 강화했지만 중대재해법은 정작 재해를 줄이는 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는 256명으로 2021년 248명보다 8명 많았다. 사망사고가 나면 대표가 징역 1년 이상의 형을 받게 되는데도 사망사고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중대재해법은 내년이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여건이 더욱 열악한 곳까지 넓어지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처벌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법이 되도록 중대재해법 재검토가 시급하다. 부작용이 많은 만큼 중대재해법은 서둘러 뜯어고쳐야 한다. 고용노동부도 1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6월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애매한 법 조항을 명확히 하고,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에 비중을 두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물론 재계와 정부 모두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특별한 예방 대책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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