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이탈리아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 기본소득 축소 등이 담긴 시행령을 의결하는 등 노동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이탈리아 정부가 노동 개혁에 나선 것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기본소득제도에 따른 만성적 재정적자를 방치했다가는 ‘유럽의 병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우파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1일(현지시간) 내각회의를 열고 좌파 정당이 추진한 기본소득 격인 ‘시민소득’을 도입 4년 만에 혜택과 기간을 대폭 줄이고, 계약직 고용조건도 완화해 기업에 단기계약 고용의 길을 넓혀주는 노동 개혁 시행령을 의결했다.

빈곤층 시민소득을 내년 1월부터 가구당 평균 550유로(약 81만원)에서 월 350유로(약 51만원)로 대폭 줄이고 기간도 12개월로 단축했다. 12~24개월의 단기 계약직 고용이 전체 정규직의 20%를 넘을 수 없도록 한 규정도 완화했다.

노조와 야당은 정부가 노동자들을 생계 위기로 몰아넣고 비정규직이 양산돼 고용 불안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멜로니 총리는 내각회의 후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개혁하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만성적 재정적자를 키우고 근로 의욕을 꺾는 정부 보조금을 그대로 두고는 노동시장의 정상화는 물론 경제 회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멜로니 총리는 연금개혁 강행 후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보다 욕을 먹더라도 미래 세대에게 무거운 나랏빚을 안기지 않겠다는 두 지도자의 결단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유럽은 시대 변화에 맞춰 노동시장 등에 개혁 드라이브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나랏빚이 급속히 늘어나는 등 국가재정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도 여야는 선심성 퍼주기 경쟁에 여념이 없다. 총선을 1년 남짓 앞두고 정치권은 표심을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을 꺼내는 등 벌써 조짐이 심상치 않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부터 노동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지만 취임 1년이 됐는데도 성과가 거의 없다. 야심차게 제시했던 근로시간 개편안은 노동계와 여론의 거센 반대에 밀려 흐지부지한 상태다.

윤 정부는 노동 개혁의 일정과 좌표설정을 보다 치밀하게 잡고 과감한 실행으로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강성 노조에 기울어진 노사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해야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노동 개혁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3%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노동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응답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이탈리아의 노동 개혁을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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