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국회에서 야권 주도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취지로 판결했다. 부적절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노조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개별 조합원 책임 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 기여 정도 등을 종합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울산공장 생산라인을 점거한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노조원들이 파업으로 인한 전체 손해액(271억원) 중 50%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현대자동차가 청구한 20억원을 노조원들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동 불법행위를 인정한 2심의 판결을 깨고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하면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이념에도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 취지가 ‘노란봉투법’ 입법 목적과 닮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지난달 20일 ‘대법원의 불법 쟁의행위 손해배상 판결 규탄’ 제목의 공동성명을 냈다. 경제 6단체는 “민법은 공동 불법 행위를 한 사람 모두에게 발생한 손해 전부의 책임을 지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이는 수십 년간 불법 쟁의행위 사건에 대해서도 산업 현장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러한 민법의 기본원칙을 부정하고 우리 산업 현장의 법치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6단체가 한목소리로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경제계는 이번 판결을 무겁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6단체는 “대법원 판결은 불법 쟁의행위 사건에 대해 불법행위에 가담한 조합원을 보호하는 새로운 판례법을 창조하고 있다”며 “공동 불법 행위 제도의 근본 취지를 몰각시키고, 종국에는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국회에서는 야당이 여당과 경제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이 5월2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한 일을 겨냥한 것이다.

6단체는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 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노사 관계를 파탄 내는 판결이 속출하면서, 이 나라의 기업과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법원은 공정이라는 보편적 기준에 따라 판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기업은 노조원들의 책임을 일일이 입증할 수 없으면 배상 청구가 불가능해진다. 기업 측 부담이 커졌다. 산업 현장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공정의 잣대는 노사(勞使)에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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