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크로이든 타워(50층), 싱가포르 애비뉴 사우스 레지던스(56층), 호주 라 트로브 타워(44층)’

이들 고층 건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듈러 공법’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모듈러 공법은 말 그대로 주택의 일부를 모듈로 만든 뒤 현장에서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 완성하는 방법이다. 기본 골조와 전기 배선, 현관문, 욕실 등 아파트의 70~80%를 공장에서 미리 만든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 이미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경우 전체 주택시장에서 모듈러 공법 활용 비중이 45%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초기 단계다.

지난달 경기 용인시 영덕구에서 열린 공공임대주택 준공식에 건설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이라는 이름의 지하 1층, 지상 13층, 106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는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졌다. 충북 진천의 공장에서 만든 컨테이너박스 모양의 모듈 120개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전체 공사기간은 터파기부터 준공까지 13개월이다. 20개월 안팎인 일반 아파트 건설 기간보다 35% 단축됐다.

주목할 점은 순수 국내 기술로 이번 모듈러 건축을 해냈다는 것이다. 13층이면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모듈러 건축물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엔지니어링과 금강공업이 건축했다. 연구원은 이번에 강도 6의 지진에도 버티는 내진성을 확보했다. 화재 시 3시간 이상 견딜 내화기술 또한 개발했다. 모듈의 제작오차와 현장 시공오차를 최소화하는 기술도 마련했다. 

모듈러 공법은 향후 건설업의 판도를 바꿀 만한 잠재력을 갖췄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공기 단축이다. 현장이 아닌 공장에서 미리 주택을 만들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진다. 공장 자동화를 통해 인력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고, 날씨 영향도 덜 받는다. 제조업처럼 공사의 품질도 상향평준화할 수 있다. 

최근 인건비,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원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공사기간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 인건비 등 생산비용이 높아진다. 토지보상, 각종 인허가, 강성노조 등으로 인해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는 현장도 많다. 이런 경우에도 공장에서 모듈을 만들면서 대응하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주 52시간 근로 등 각종 규제 리스크의 영향도 적게 받을 수 있다. 현장 작업 소요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낙상, 충돌 등으로 인한 인명사고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재 건설업계의 여러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모듈러 공법이 쥐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제도 있다. 모듈러 건축이 국내에서 활성화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모듈러 공법이 콘크리트 건축물에 비해 약하고, 완성도도 떨어진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정부와 학계, 건설업계가 삼박자를 맞춰 이에 대한 인식 전환, 규제 완화, 기술 고도화, 사업 활성화에 함께 힘써야 한다. 건설사들은 모듈러 공법을 적극 도입해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에도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갈수록 인건비 등 원가 부담은 커질 것이다. ‘모듈러 선진국’으로 거듭나 국내외에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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