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현상’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 교체에 일조를 했을 만큼 큰 사회 의제였다. 그 현상을 진정시킬 만한 긍정적 사회적, 정책적 조처가 있진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잠잠해진 느낌이다. 

최근 한국 청년 세대에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를 물은 설문이 있었다. 무려 41.6%가 ‘주택 장만’을 1위 고민으로 손꼽았다. 2위인 ‘가족의 건강’ 걱정은 15%였음을 감안하면 집 장만은 온몸을 짓누르는 강박이라 말할 만하다. ‘영끌’할 소지는 아직도 충분히 큰 셈이다. 

그럼에도 마치 해결된 것처럼 ‘영끌 현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까닭은 무엇일까.

답을 위해 ‘영끌 현상’을 겪지 않은 듯 보이는 일본을 잠깐 경유해 보자. 1970년대까진 일본 인구 약 25%가 주택을 임대해 살고 있었다. 1990년에 이르면 그 수치는 50%에 이른다. 자가 장만에서 임대 형태로 주거 방식을 바꿔 간 셈이다. 한국 사람이 알면 놀랄 정도의 저금리로 일본 은행은 주택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0.5% 정도의 저금리로 집 장만에 필요한 돈을 빌릴 수가 있다. 그럼에도 집 장만을 피하고 있다. 

특히 현재 젊은 세대에선 임대 형식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영끌은커녕 집 장만도 좀체 시도하지 않으면서 집 임대로 넘어간 데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버블경제의 트라우마가 보수적 주택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일본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가 집 장만으로 겪는 고통을 직접 지켜 보았다. 집을 사는 순간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세상을 목도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산산조각난 세상을 살았다. 부동산은 자산 가치 증식 수단이 아닌 감가상각 자산인 시대를 일본 청년 세대는 전 생애에 걸쳐 경험했다. 아무리 싼 금리로 대출을 유도해도 그들을 주택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어렵게 됐다. 

부모 세대의 주택 경험이 현해탄 한 편의 젊은 세대에겐 ‘영끌’을, 다른 편의 MZ세대에겐 감가상각의 태도를 전수한 셈이다. 

트라우마 외 금융적인 요소도 주거 형태 변화의 원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저금리 주택대출 수혜는 의외로 한정적이다. 정규직 종사자가 아니고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비정규직 종사자에겐 그 혜택이 좀체 돌아가지 않는다. 비정규직 종사자가 빠르게 늘어난 일본의 고용 형태가 주택 장만의 문화에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집을 사는 대신 임대하면 훨씬 더 유연하게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자연스럽게 주택은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비정규직 증가라는 일본 고용형태의 변화가 주거 양식 변화에 일조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느 틈엔가 집 마련이 중산층 진입이며 행복 가정이라는 상징성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집이 줄 가능적 혜택을 더 강조하고 있다. 도심에서 편하게 출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눕히되 은행에 꼬박꼬박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주거 생활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 버블 경제의 트라우마와 고용 형태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다. 

최근 한국의 주택 사정과 일본을 대비해 보자. 집값은 떨어지고, 미분양 사태가 늘며, 비정규직 고용 형태는 크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금리 인상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고 일본 이야기에 대입해 보면 ‘영끌 현상’이 잠잠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젊은 층이 보이는 주택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한국에서 반복될 여지가 크다. 많은 여건들이 일본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일본의 인식 변화가 합리화 과정으로 보이긴 하지만 한 번 더 비틀어 설명하면 비극적 해석도 가능하다. 조금 더 열심히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멀어지고 있다는 비극으로 설명 가능하다. 그래서 ‘영끌 현상’이 잠잠해진 것을 두고 고민스러운 사회 의제가 해결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주택과 관련해 큰 희망을 품기는커녕 좌절을 일상화하며 살고 있음을 ‘영끌’이 아닌 다른 말글로 논의하는 일이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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