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십니까?” 요즘 유행하는 인사말이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dystopia)’이다. ‘디스토피아’는 한국 건설업이 갖는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편견을 무시해선 안 된다. 수요패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철근 누락으로 인해 공공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순살 아파트’란 말까지 등장했다. 

헛소문도 문제다. 엉뚱한 건설업체들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 교수는 부동산 가격 결정 과정에 비이성적 행태가 개입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헛소문은 사실보다 더 큰 임팩트를 남길 수 있다. ‘비정상적 과열’로 인해서다. 

모든 건설업체들을 싸잡아 비난하면 안 된다. 그 경우 억울한 업체들이 나올 수 있다. ‘상이성’ 때문이다. 모든 집단 내엔 상이성이 존재한다. 과거 경제이론들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집단들 간 상호작용만을 분석했다. 그렇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도 매우 초보적이다. 서로 다른 두 집단 간 이해조정이다. ‘제로섬’ 사고방식이다.

신(新)이론은 서로 다른 이해집단 간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같은 이해집단 내 상호작용도 동시에 분석한다. 포인트는 그 이해집단 내 서로 다른 ‘유형’들의 뒤섞여짐이다. 사람들은 본래 다양하다. 착한 사람들도 나쁜 사람들도 있다. 근로자 집단 내에도 착한 근로자들과 나쁜 근로자들이 뒤섞여 있다. 사용자 집단 내에도 착한 사용자들과 나쁜 사용자들이 뒤섞여 있다. 그렇기에 선별이 필요하다. 게임이론에선 그 선별작업을 스크리닝이라고 한다. 선별이 없으면 가장 나쁜 기업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고 가장 착한 기업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그 경우 착한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같이 나쁜 기업이 되어 ‘착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쁜 기업들도 문제이지만 나쁜 시스템이 더 큰 문제이다. 실은 나쁜 기업들은 나쁜 시스템으로부터 나온다. 하버드대 교수 마크 멜리츠는 약관의 나이에 ‘선택효과’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핵심 내용은 간단하다. 나쁜 기업들이 퇴출될 때 착한 기업들 중심으로 자원 재배분이 이뤄지고 그 결과 총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멜리츠 교수는 그 ‘선택효과’의 동력을 오롯이 경쟁에서 찾았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다. 거짓말 가능성이다. 표준경제학엔 시장참여자들이 거짓말을 통해 챙길 이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쁜 기업이 ‘착한 척’하면 이득을 챙기기가 더 쉬워진다. 선진적 시스템에선 그러한 거짓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반면 후진적 시스템에선 그러한 거짓말이 잘 통한다. 그렇게 거짓말이 통용되면 시장실패가 일어나고 그 경우 경쟁은 무의미해진다.

한국 건설산업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시스템이 없다. 착한 기업들을 육성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을 갖추려면 필요조건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선별 기능이다. 그 선별 기능은 ‘도덕성’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구현된다. 국토교통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제도설계이다. 물론 ‘철근 누락’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이 필요하다. 철근 누락의 본질은 ‘전관 카르텔’일 수도 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공기업 퇴직자들 중 다수가 철근 누락 업체들의 임원으로 재취업했다고 한다. 전관 카르텔과 철근 누락 사이에 상관성을 시사한다.

문제의 근원은 도덕적 해이이다. 도덕적 해이는 별것 아니다. 바로 ‘감춰진 행동’이다. 때로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이행 여부가 관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도덕적 해이 방지책은 뭘까? ‘행동’을 감추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을 감출 필요가 없도록 유인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법 집행 와중에 국토부가 잊은 것이 있다. 바로 포상이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하듯 완전한 유인체계를 위해선 처벌과 함께 포상도 따라야 한다. 전수조사 후 ‘철근 누락’에 대해 벌칙이 가해질 것이다. 그걸로 그치면 안 된다. 착한 기업들의 발굴 및 포상도 필요하다. 한국은 역설과 역선택의 나라이다. 따라서 착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윤 창출에 애로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번을 계기로 묵묵히 책임을 다해온 업체들이 관심을 받고 우량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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