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주차면 상당부분은 몇 달째 주차금지 띠가 둘러쳐져 있다. 천정 배관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이다. 주차난을 생각하면 빨리 보수가 됐으면 싶은데, 영 진전이 없다. 이 아파트는 분양된 지 갓 2년이 넘었다.

새 아파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생각보다 크다. 입주한 지 얼마되지 않아 누수된다든가, 창호 사이가 들뜬다든가 심지어 벽에 금이 가 있더라는 불만은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입주자들은 행여 집값이 떨어질까봐 속앓이를 할 뿐 대놓고 말도 못 한다. 최근 철근 누락 전수조사 결과를 본 주택소비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럼 그렇지”다. 

국토교통부가 철근 누락 아파트 건설사에 대해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린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강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 카르텔에 대해서도 엄한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오랫동안 누적돼온 건설업계의 폐해에 대해 건설업계 내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청과 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설계, 시공, 감리가 따로 놀았다. 불분명한 수의계약도 많았고 저가 수주를 부르는 입찰제도도 계속 지적됐다. 갈수록 공법은 어려워지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현장 소통은 되레 어려워졌다. 공기단축과 비용절감이 화두가 되면서 과거부터 내려온 각종 악습들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건설업에 진출한 한 제조업 기반 대기업 관계자는 “건설현장에는 다른 업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먹구구식 관습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안 나더라”고 전했다.

다들 쉬쉬하는 사이 건설업계의 경쟁력은 약화됐고, 이는 건설 중인 아파트의 외벽 붕괴와 지하주차장 붕괴로 이어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건물을 척척 지어내던 K-건설업계의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렇게 문제가 드러난 게 다행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에는 대형사고가 없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과 같은 대형참사를 겪지 않고도 한계에 도달한 현장의 문제점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건설업계는 천운일 수도 있다. 물론 고통은 적지 않고, 해법도 쉬운 것은 아니다. 앞으로 엄청난 고차원적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건설업계 전반에 누적된 시스템 문제여서 특정 기업, 특정인, 특정 조직에게만 책임을 묻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20년 전 처음 건설담당 기자가 됐을 때를 생각해 보면 업계도 많이 바뀌었다. 다만 다른 분야가 바뀌는 속도에 비하면 변화가 더뎠다. 

과거 건축물은 짓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불투명하더라도 값싸고 빨리 짓는 게 덕인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전과 품질, 절차, 그리고 사후관리 모두를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이는 한국 소비자뿐 아니라 글로벌 소비자 모두의 요구이기도 하다. K-건설이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내부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업계, 정부, 언론 등 ‘건설밥’을 먹고 사는 경제주체라면 머리를 맞대고 묘안 마련을 위해 고민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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