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다. 지역의 도시와 마을들이 꼼짝없이 스러져간다. 진보, 보수 관계없이 정권마다 도시 재생, 마을 르네상스, 지역 활성화 별별 슬로건을 동원했건만 사정은 좋아지질 않는다. 지자체에서 내세운 장밋빛 청사진은 사기에 가깝다고 할 만큼 현실과 거리가 있다. 나날이 나빠지는 제 마을의 사정을 온몸으로 다 맞는 주민들은 거짓 공약임을 알고 있지만 오랫동안 겪은 탓에 무덤덤한 표정이다. 희망 갖는 일이 때론 더 고통스럽기에 희망과 대안에 대해 입을 닫고 산다. 

세상 여론을 주도하는 수도권은 아예 이 문제에 입을 닫고 눈도 지그시 감는다. 그러니 도시 소멸은 마치 세상에 없던 양 되고 만다. 

수도권 도시는 아직도 외곽으로 도시 경계를 넓혀가며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 자신들은 도시 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궈 구도심을 살리기도 했는데 왜 지방 도시에선 잘 이뤄지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힐난하기도 한다. 그러니 도시 소멸은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하고 지자체의 우둔함 탓인 것처럼 처리되고 만다. 그러는 사이 지역에서는 학교가 문을 닫고, 의사 없는 병원이 늘고, 자영업자는 실업자로 전락하는 어두운 현실이 도시를 휘감는다. 

백약이 무효고 세상 눈은 수도권에 고정됐으며 현실은 어둡지만 그냥 주저앉을 순 없다. 먼 미래를 논의할 필요도 없다. 거긴 아직 주민이 살고 있고, 미래의 주인인 어린아이들이 그곳을 고향으로 삼으며 자라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라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니 ‘뭐라도’ 해야 한다. 그 시작을 위해 적어도 굳건한 신조는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지방 도시 정책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희망도 별로 없다”는 솔직함이 그 시작점이어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허황된 슬로건을 내걸고 희망 고문을 벌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솔직함에 기반해 몇 가지 구체적 다짐과 실천을 해내야 한다. 우선 지방 도시의 (재)성장은 불가능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수도권을 무한 모방해 개발 욕심을 냈던 것에 대한 솔직한 반성도 이어가야 한다. 

아울러 누구도 지방도시를 살려주는 구세주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제 손으로 지역 사정에 맞는 영리하며 색다른 재생을 강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모든 다짐과 실천을 한데 모아 솔직함을 구성하고, 그를 지방 도시 살리기의 출발선에 세울 필요가 있다.

지방 도시의 소멸의 책임을 지방의 여러 주체에 뒤집어 씌우고자 함이 아니다. 소멸이 ‘제 문제’이니 당연히 ‘지방 주민’ 손으로 풀어야 하고, 중앙 도시를 흉내내려 한 ‘과오’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지혜롭게 재생’하자는 권유이며 격려다. 물론 중앙 정부의 형편없었던 지방 도시 정책이나 대기업 중심의 토건 사업에 대한 비판을 생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판에 몰두하다 보면 생성으로 이어질 에너지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지혜를 짜내는 일이야말로 쇠락의 속도를 늦추는 가장 획기적인 방도다. 

솔직함을 미래에 투영해 새로운 도시 재생으로 이어가는 데는 몇 가지 전술이 요청된다. 

무엇보다도 성장, 확장이 아니라 퇴보, 축소를 중심에 둬야 한다. 인구가 줄어들 것을 예상해야 하고, 모든 큰 것을 지양하고, 지역적인 것을 우선해야 한다. 솔직함의 태도 앞에선 그 같은 퇴보와 축소는 실망일 수 없다. 때론 다시 적당함의 제 자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너무 크고, 중앙집중적이며 대기업적인 것을 떨쳐낼 필요가 있다. 큰 것, 중앙적인 것, 확장적인 것, 큰 것을 중시해온 탓에 그동안 제 사는 꼴을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제 몫을 챙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절연하는 전술은 필수적이다. 중앙정부가 정책을 세우고, 대기업 토건 회사가 수주한 후, 지역 건설사가 부스러기 고물을 챙기는 그런 과정과 이별하는 일은 매일 반복돼야 한다. 

지자체, 지역민, 지역 기업에 이르기까지 솔직함과 그 실천 전술에 널리 그리고 길게 전염되길 기대한다. 정말이다. 무효인 백약 중에서도 그것만이 다시 꺼내 든 유일한 약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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