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하도급은 ‘내로남불’이다. 그래서 특징이 따른다. 하나, 윤리에 상대성이 적용된다. 자신에겐 이유가 있고, 남에겐 이유가 없다. 다른 하나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역설적이다. 한국 건설산업 선진화를 위해 꼭 해야 할 것이 바로 불법하도급 근절이다. 앞서 언급했다. 불법하도급은 현실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는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불법하도급은 매우 만연해 있지만 엄밀히 말해 범죄에 속한다. 쓴소리를 하자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할 산업 내에 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 된다.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모두가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시스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 속에서 독야청정하려다가 경영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하도급을 주고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공사 입장에선, 하도급을 주면 직접 공사하는 것보다 더 쉽게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비 후려치기를 통해서다. 하도급 과정에서 공사비가 대폭 깎인다는 사실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시공사와 시행사 간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시행사 입장에선, 공사비를 후려치는 한이 있더라도 공사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교섭’ 상황인 것이다. 하도급을 줄 수 있는 쪽은 교섭력 우위에 서고 하도급을 받고 싶은 쪽은 교섭력 열위에 처한다. 교섭력은 항상 경제적 이윤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쉽게 이윤을 챙기는 시공사를 보고 배우지 않을 시행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도급이 재하도급 되고 또 재재하도급이 되며 부당이윤 규모가 커진다. 회사만 이윤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 불법하도급에 개입된 모든 공사 단위의 관리자들에게도 ‘부수입’을 챙길 여지가 발생한다. 

범죄경제학의 권위자 게리 베커 교수가 제시한 이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범법을 저지르기 전에 범법 사실이 적발되면 처벌로 이어진다는 것을 안다. 적발되지 않는 경우엔 부당이윤이 돌아간다. 적발될 경우 처벌 즉, 비용을 치러야 한다. 적발 가능성은 확률분포로 존재한다. 그 확률분포에 따라 감수해야 할 기대비용과 기대이윤이 계산된다. 부당할망정 그 기대이윤이 기대비용보다 크면 범법을 실행하고, 작으면 범법을 실행하지 않는다. 게리 베커의 이론은 경제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예측력이 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경제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 적발 확률을 높이든지 또는 처벌 정도를 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정도가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지적이 항상 제기돼 왔다. 불법 재하도급을 하다 적발돼 가장 크게 처벌받은 경우가 ‘1년간 영업정지’였다고 한다. 그 경우, 공사가 없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마냥 쉬고 있느니 불법을 한번 시도해보고 적발될 경우 1년 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그건 처벌이 아닌 셈이다. 왜냐하면 ‘영업정지’라는 처벌을 받지 않았어도 어차피 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고픈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 잡혔을 때 한 끼 굶긴다면 그건 처벌이 아니다. 따라서 배고픈 장발장에게 빵을 훔치는 것이 ‘지배전략’이 된다. 게리 베커 이론에 따르면, 처벌 ‘형식’은 존재하지만 처벌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불법 재하도급이 성행하는 것은 게리 베커 이론이 예측하는 바이다.

업계에서는 절대 공사 기간, 최저가 낙찰제 등과 같은 건설산업 내 구조적 모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시공사가 하도급 계약을 주려 할 때 대개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 업체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업역량과 기술력이 도외시되고 비용 절감이 목표가 된다. 값싼 인력과 불량 자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무리한 비용 절감은 부실공사로 이어진다. 최저가 입찰 외에도 소위 ‘운입찰’이 불법하도급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즉, 능력 부재 시공사가 운으로 낙찰될 경우 하도급을 주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불법하도급 문제는 한국의 건설산업 시스템을 반영한다.

다시 원론이다. 불법하도급은 안 된다. 왜? 말 그대로 ‘불법’이기 때문이다. 법은 지키려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다고 하지만 배를 곯는 이에게 빵을 훔칠 권리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불법하도급이 한국에선 특히 안 된다. 왜? 건설산업 내 시장 시스템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안 지키는 기업이 법을 잘 지키는 기업보다 더 큰 이윤을 낼 수 있다면, 규칙을 지킬 유인도 노력에 대한 보상도 같이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은 시장 시스템이 사라진다. 시장 시스템이 유지되면 게으른 장발장만 배를 곯겠지만, 시장 시스템이 사라지면 부지런한 장발장도 배를 곯게 된다. 진짜 비극은 배곯는 장발장이 아니라 시스템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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