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규제혁신 전략회의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킬러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대통령 말씀처럼 오늘날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 일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단순히 먹고 사는 것보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고, 공동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가치가 필요하다.

말의 의미를 좀 더 풀어보면, 규제는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규제에는 법규뿐만 아니라 관행도 포함된다. 일을 하는데 있어 불합리한 법규나 불공정한 관행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가치를 훼손시킨다. 반대로 규제 또는 관행을 혁파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소비가 촉진되며, 시장이 활성화된다. 

이러한 일과 규제, 그리고 혁파의 키워드를 건설업에 대입해보자. 건설업은 일과 관련한 수많은 불공정한 관행이 존재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어렵게 한다. 대표적인 관행이 바로 건설하도급 공사의 유보금이라고 할 것이다. 일부 원청사는 계약상 의무 또는 하자 보수를 담보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도급 대금의 일부를 하청사에게 지급하지 아니하고 유보시켜 놓고 있다. 어찌보면 원청사 입장에서는 ‘계약상 의무 또는 하자 보수 담보’를 보전하기 위한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하청사는 대부분 하도급 계약 이행을 위해 계약보증서, 하자 보수를 담보하기 위해 하자보수보증서를 제출하고 있다. 결국 유보금은 하도급대금 편취를 위한 악용 수단에 불과하다. 

실제 대한전문건설협회 소속 회원사를 대상으로 최근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하도급거래에서 유보금 설정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44.0%, 유보금을 설정한 방식은 구두 방식이 47.2%로 나타났다. 

하청사가 유보금 명목으로 하도급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면, 협력업체 대금 및 근로자의 임금 지급 지연, 경영상 위기 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는 하청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계된 또 다른 협력업체와 건설근로자의 먹고 사는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건설하도급 공사의 유보금을 혁파한다면 원청사와 하청사뿐만 아니라 다른 협력업체, 건설근로자까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보금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변형하거나 별도의 특수조건을 통해 설정되기 때문에, 법률만 가지고 혁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유보금은 하도급법상 하도급대금 지급 의무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불공정 행위이고, 시정조치, 과징금, 벌금 등의 제재가 가해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하도급 계약 역시 ‘사적 자치의 원리’가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의 하도급대금 지급과 관련해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하도급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례가 존재한다. 설령 원청사가 처벌을 받더라도 이로 인해 하청사는 거래 단절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가 또 어렵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보금 설정을 금지하려면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으로 규율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부당특약 고시’, ‘부당특약 심사지침’에서 유보금을 부당특약으로 규정하고, ‘건설업종 표준하도급 계약서’에서 금지해야 한다. 나아가 부당특약 무효화와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 의무화에 대한 공론화가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유보금 관행을 혁파하고, 건설업에서도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가치가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