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이라는 용어가 의도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는 중이다. 한국건설을 대표하는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30대 건설업체 단체에 속한 기업명에 건설이 포함된 회사가 40% 이하다. 건설기업이 사명에서 건설을 지우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이른바 ‘건설 탈출’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한탄이 나온다. 올해 9월까지 자진 폐업한 업체 수가 405곳에 이른다고 한다. 2006년 이래 폐업 수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 PF 급감과 자금난 등으로 경영난에 이어 부도직전까지 몰린 업체수가 규모와 관계없이 늘어나고 있다.

건설업에 몸을 담고 있는 기술인까지 10명 중 4명이 직장 이탈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한 연구기관이 인용한 일본건설의 경우 건설이 위험할 것 같다는 인식 때문에 건설직업을 선택하지 않는 청년이 10명 중 8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 20대 젊은 층의 인구가 과거 20년 동안 약 14%가 감소했다. 건설업에 신규로 진입하는 20대 청년층의 인구는 총인구 감소보다 5배나 많은 75%가 줄었다. 건설이라는 직업이 청년층에게 매력을 잃어버렸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탈(脫)-건설’ 현상 이면에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부실공사와 18개 주요 산업 가운데 만인율 사고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점,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물류난과 고물가 영향으로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건설에 3不(부정·부패·부실)이 국민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3不 이미지는 재료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건설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상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건설원가에 거품이 끼어있기 때문에 건설업체가 감내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다.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주장했던 50% 원가거품론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건설에 어느 순간 ‘K-건설’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K’를 붙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첫째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국내 시장에서 ‘K’는 별 의미가 없다. 둘째는 ‘K-건설’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건설을 한국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脫-건설이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K-건설은 긍정적으로 보는 차이다. 脫-건설이 과거와 현재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K-건설은 현재와 미래를 겨냥하고 있는 차이다.

脫-건설을 K-건설로 전환시키는 주체는 건설산업이지 정부나 타 산업이 아니다. 脫-건설의 후유증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준다. 우리 주변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도로나 지하철, 상수도와 하수도, 도시와 주택, 전기 등은 국민과 함께 하는 생활필수 시설들이다. 국민인프라는 공기와 같아 없으면 살 수 없지만 평소에 존재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인프라가 부실하면 국민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하게 된다. 부족한 인프라는 국민경제를 파탄시키고 동시에 국가경쟁력을 추락시키게 된다. 미국이 인프라를 국가의 중추, 영국이 경제의 중추로 정립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인프라는 국민이나 국가의 선택권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인프라를 계획하고 공급 및 운영하는 주체산업이 건설이다. 미국이 국가건설 목표를 범정부·범산업 차원에서 수립한 것이나 영국이 재무성 주도로 국가 인프라 전략을 수립했던 이유는 건설산업의 부실이 국민생활과 인프라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절실하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국민과 국가에 선택권이 없는 건설과 인프라이기 때문에 정해진 답이 있다. 포기 불가능하다면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건설산업 생태계 혁신에 장기간과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 외에 퇴로가 없다. K-건설이라는 용어는 화장품이 아니다.

脫-건설을 K-건설로 대전환시키기 위해 무대 뒤에 숨어있는 건설의 리더그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인프라와 건설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3不에 갇힌 건설이 국민과 국가경제에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위협적이라 해도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건설은 인프라라는 불멸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불멸의 시장을 가진 건설은 또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인프라를 국민과 경제가 만족할 때까지 혁신해 K-건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챔피언 산업을 만드는 책임이다. 국가나 정부, 그리고 국민이 이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다. 건설산업 스스로가 나서야 가능하다. 인공지능, 디지털, 로봇, 양자컴퓨팅 등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타 산업과 기술이 건설산업과 기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가 현실이 돼 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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