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혼자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없다. 자원이 없고, 내수를 받쳐줄 인구가 많지 않고, 후발 경제국이고, 그래서 지금껏 주로 수출로 먹고살아 온 것이다. 정부가 위기 때마다 안심하라고 말하는 한국 경제의 튼튼하다는 펀더멘털(기반)은 이렇게 번 돈을 모아 놓은 보유외환 등이 꽤 된다는 뜻이다.

2023년은 이런 한국 경제 틀이 바뀌어야 하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의 최대 수출국 중국의 리오프닝이 시작됐지만 결과가 시원찮았다. 또 다른 거대 시장 미국은 한국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1년 전부터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화 조짐이다.

최근엔 중동 화약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무장 정파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다. 한국으로선 설상가상이며, 최악 중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최악인 이유는 중동이 우리에게 중요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 건설사가 돈 벌려면 주택 시장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여러 여건상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 직원 급여 등 회사 운영자금도 만들기 어렵다는 중견·소형 건설사의 최고경영자를 최근 많이 만났다. 그들의 관심은 언제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냐는 것이었다. 이런 대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또 바뀌었다. 한국 해외건설 최대 수주 텃밭이라는 중동에 불이 났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해외 누적 수주는 235억3000만 달러로 2015년(345억 달러) 이후 8년 만에 가장 큰 규모였다. 중동이 79억3000만 달러(34%)로 가장 많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우리 건설사의 주력 무대는 아니지만, 이 전쟁의 여파는 클 것이다. 중동 전쟁은 늘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올해 정부가 목표한 해외수주 350억 달러 달성도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더 무서운 중동발 위협은 석유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한다. 이 중 약 67%가 중동에서 온다. 국제금융센터는 10월16일 보고서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이 장기화하고 이란으로의 분쟁 확산 등으로 전개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이 80달러 후반인데 그 두 배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리터당 1770원대인 국내 휘발유 가격도 시차는 두겠지만 덩달아 뛸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대다.

대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중동 전쟁을 막을 힘도, 석유를 당장 파낼 방법도 한국엔 없다. 199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경험한 한국 경제가 이후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도 유류세 인하·유가연동 보조금 연장, 물가 현장점검 강화 등 미봉책으로 계속 연명하려는 게 안타깝다. 

어떻게 흐를지 모를 이번 위기가 한국 경제의 틀과 체질을 완전히 바꿀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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