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부쩍 가계부채가 위험하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79조8000억원으로 8월 말 대비 4조9000억원이 증가했다. 예금은행에서의 가계대출은 4월부터 증가세를 기록한 뒤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지속 중이다. 은행권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계대출 통계의 속보치 말고 우리나라 전체의 정확한 가계대출을 보면, 2023년 2분기 경제 전체의 가계신용(가계부채) 규모는 1862조7809억원으로 1분기보다 0.5% 증가했다. 최근의 증가율은 작년 4분기 전기 대비 -0.2%, 올해 1분기 -0.8%로 감소한 이후 2분기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가계부채가 감소하다가 다시 늘었으니 문제가 있어, 정책당국도 그렇고 다수의 둠(Doom)들도 다투듯이 경제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주장은 BIS(국제결제은행)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가계부채/GDP 비율에 근거한다. 이 비율을 해석해 보면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가계부채의 수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2022년 말 주요국의 가계부채/GDP 비율을 보면 한국이 104.5%로 선진국 중에서는 호주(111.8%)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호주를 포함해 대부분 국가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인 반면 한국만 유독 비율이 올라간 점도 근거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일단 가계부채가 2분기 들어 증가세로 전환된 것이 문제인가라는 점이다. 모든 경제변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증가하게 돼 있다. GDP도 고용도 그렇다. 물가도 너무 상승률이 높으면 문제이지만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을까? 가계신용 통계가 조사된 2002년 4분기부터 전기 대비로 분기 가계신용 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나왔던 경우는 2003년 1분기와 3분기, 2009년 1분기, 2022년 4분기와 2023년 1분기 등 다섯 번에 불과하다. 더구나 연간 기준으로 가계신용이 감소했던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둘째, 증가율이 문제가 되는가? 2002년 4분기부터 가장 최근까지의 가계신용 평균증가율은 1.7%에 달한다. 최근인 2020년 1분기부터 분기 평균증가율도 1.1%나 된다. 지난 2023년 2분기 증가율은 0.5%에 불과하다. 셋째, 그렇다면 가계부채 규모가 GDP 규모를 넘어서는 것 그것도 선진국 중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점은 어떠할까? 이 부분은 우려가 된다. 다만 필자가 우려하는 부분과 세간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결이 다르다. 우선 세간의 우려는 경제위기를 상정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를 넘어서는 높은 수준에서 어떤 이유에서 가계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디폴트가 만연하고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이어지면서 외환위기나 일본식의 장기불황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가계부채의 구성을 보아야 한다.

우리 가계부채의 절반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최근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이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기타대출(주택담보 이외 대출)이나 판매신용(카드, 할부금융)은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오히려 기타대출이나 판매신용의 디폴트 리스트가 더 크다. 담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은 확실한 담보가 있다. 그것도 LTV(담보가치비율)이라는 안전장치를 도입해 담보가치의 60~70% 수준만 대출해 준다. 만약 가계대출에 디폴트가 확산하려면 바로 이 주택담보대출에 문제가 생겨야 하고 그것은 주택가격이 평균 30% 이상 급락해야 한다는 말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큰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주택가격 하락률은 20%도 채 안 됐다. 따라서 일부 디폴트가 발생할 여지는 있으나 우리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필자가 우려하는 바는 가계대출에 대한 이자상환 부담이 결국 내수시장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자로 내야 할 돈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고 소비시장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 최근 경제 전반의 소비 회복세가 미약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높은 금리와 맞물린 가계의 이자 부담 때문이라 판단된다.

가계부채가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빚’을 죄악시하는 우리만의 교조가 있다. 빚이 없어야 건전하다고 여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경직된 사고가 과하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잘못된 처방이 내려질 수 있다. 무조건 가계부채가 줄어야 한국 경제가 건전해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과도한 공포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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