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설하도급 공정거래 체감도 조사가 마무리됐다. 공정거래 체감도 조사는 대한건설정책연구원과 대한전문건설협회가 공동으로 전문건설업체들이 하도급거래 현장에서 느끼는 공정거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7년부터 매년 조사하고 있다. 하도급거래 실적이 있는 5000개의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39개 항목에 걸쳐 상세하게 조사하기 때문에 다른 어느 조사보다 현실에 부합하는 조사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2023년 조사 결과 체감도 평균점수는 67.9점으로 나왔다. 2022년의 체감도 평균점수 68.8점보다 0.9점 하락한 수치이다. 2021년부터 따지면 3년 연속 하락(2020년 73.2점→2021년 72.5점(-0.7)→2022년 68.8점(-3.7))→2023년 67.9점(-0.9))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3년 연속으로 건설하도급에서 공정거래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으로 원도급업체의 불공정거래가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조사대상 39개 항목의 점수 분포를 살펴보면 76.9%에 해당하는 30개 항목이 70점 미만이다. 71점에서 80점 사이에 있는 항목은 9개로 23.1%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 9개 항목도 그렇게 만족스러운 점수는 아니다. 체감도 점수 만점이 100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항목에서 공정거래 정도가 양호하지 못한 점수를 보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 인상, 생산요소의 원활하지 않은 공급, 높아지는 품질기준 등 다양한 요인으로 건설비용이 증가하면서 원도급업체가 그 부담을 하도급업체에 전가하려는 성향이 강해지다 보니 불공정거래가 늘어난 것이 공정거래 체감도 조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으로 보면 하도급대금 관련 항목의 체감도 점수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 적은 금액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하고, 하도급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변동하는 공사대금을 잘 조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하도급대금 조정 관련 항목의 체감도 점수가 가장 낮다. 최근과 같이 자재가격의 변동으로 공사대금이 큰 폭으로 변동할 때 하도급 공사금액을 조정해 주지 않는다면 공사비 인상의 부담을 하도급업체가 대부분 부담하게 되는 결과가 돼 해당 건설공사는 물론 하도급업체의 경영에도 큰 부담이 된다.

또 다른 한 가지 심각한 불공정행위의 유형은 부당특약이다. 부당특약의 체감도 점수는 하도급대금 조정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낮다. 문제시되는 부당특약의 유형은 원도급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하도급업체에게 전가하거나 공사대금 청구권을 사전에 배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숨어서 구두로 몰래 하는 것도 아니고, 서면에 부당특약을 만들어 놓은 뒤에 하도급업체에게 불법적인 것도 계약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행태가 벌어지는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건설업계에도 4차 산업혁명의 열풍과 함께 인공지능, 스마트, 자동화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오면서 하도급과 같은 생산관계에 대한 관심이 예전과 같지 못한 듯하다. 새로운 조류를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조류를 생산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주체는 하도급업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생산관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화려한 말잔치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하도급 공정거래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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