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건설현장의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극강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망사고를 내면 고용주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서 감리자에게 부여된 공사중지 명령권을 강화해 이를 의무화하겠다는 개정안도 나왔다. 

특히 공사중지 명령권은 건설기술진흥법의 전신인 건설기술관리법 제28조에 1994년 처음 등장한 이래로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건설기술진흥법 40조 공사중지 명령권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건설사업자가 건설공사의 설계도서 및 시방서의 내용과 다르게 시공하거나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해 인적, 물적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재시공·공사중지 명령을 할 수 있다. 40조의2는 이로 인한 불이익 금지 조항, 40조의3은 명령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에는 그 손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이다.

그러나 공사중지 명령권이 발동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국토교통부 소속기관과 산하기관 등 14곳에서 발주한 공사 7665건 가운데 공사중지가 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중인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광주 화정지구 아파트 관련 시공업체에 대한 공사중지 명령이 발동됐지만, 감리자가 시공상의 품질이나 안전문제를 대상으로 공사중지를 명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공사중지 명령은 시설물의 품질과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를 불식시켜서 제대로 된 시설물을 완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사기간의 지연과 원가 증가라는 시공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장점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단점은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공사중지권을 둘러싼 시공사와 감리자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고 심한 경우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없는 것인가?

최근 국회에는 공사중지 명령과 관련한 개정안이 발의됐다. 감리자의 고의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을 허용하고 구조부 결함 등 중대위험에는 공사중지 명령을 의무화할 뿐 아니라 ‘공사중지 명령권’ 조치를 취하지 않는 감리자에게는 벌칙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감리자가 처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일방적인 처사다. 이 법안이 통과할 경우 감리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중지명령을 내리자니 시공사의 소송이 겁나고 안 내리자니 벌칙이 무섭다. 이래저래 감리자만 힘들어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감리자는 발주청으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중간자적인 입장이다.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은 발주청이 가진다. 외국의 경우 이러한 조항이 명문화돼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발주청이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문제의 책임을 감리자에게 모두 지라고 하고 발주청은 마치 방관자인 양 뒷짐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사중지 명령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발주청에게 명령권을 주는 게 맞을 것이다. 즉, 감리자는 현장에서의 공사중지 필요성을 발주청에 보고하고 발주청에서 판단해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할 경우 감리자는 공사중지와 관련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공사중지의 효력도 증가할 것이다. 

품질 및 안전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민간에 떠넘기고 있는 책임을 발주청에서 다시 가져와야 할 것이다.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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