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중 민간아파트 붕괴로 근로자 사망사고, 공공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에 대한 사후 대책이 여러 갈래로 진행 중이다. 국회는 경쟁적으로 의원 처벌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해당 사고를 발주기관의 전관예우로 보고 얼룩진 입찰카르텔 근절과 산업의 시스템 혁신을 담은 정상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 한다. 공공아파트 발주기관의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사업자 선정권한, 즉 발주와 입·낙찰 역할을 조달청에 전권을 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해 기존 계약 파기는 물론 전관을 고용한 사업자에게 입찰 시 감점을 주는 방안도 도입 예정이라 한다. 확정되지 않았지만 전관 입찰 배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국회입법조사처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법·제도가 망치로 변하는 것 같다. 제재에 또 다른 제재, 처벌에 또 다른 처벌을 가하기 때문이다. 마치 처벌 제도를 부실공사와 안전사고 예방의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발주기관 스스로가 발주자이기를 포기하려는 것이다. 발주, 입·낙찰 책임을 제3자에게 일임하고 계약 후 현장 감독까지 감리에게 위임하겠다는 것을 기관의 최고책임자가 공언하는 것을 보면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발주기관이 발주자이기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건설프로젝트의 주인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확정 혹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부와 국회, 공공기관이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확정되면 최대 공공발주기관 소관 건설프로젝트에 심각한 문제 발생이 예상된다.

건설프로젝트를 지탱하는 3각은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다. 설계자와 시공자는 목적물을 완성시키는 생산자다. 목적물에 하자 발생 시 계약적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설계자는 설계 결과물, 시공자는 시공 결과물에 대한 책임한계가 계약조건에 명시돼 있다. 설계자가 시공책임, 시공자가 설계책임까지 지지 않는다. 설계와 시공책임을 한꺼번에 묻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이 설계시공일괄계약이다. 설계부실이나 시공부실로 인해 품질하자나 인명사고 발생 시 발주자 책임은 없는가? 건설프로젝트에서 발주자 책임은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부터 끝까지다. 발주자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발주방식, 입찰자의 이행역량을 판별할 수 있는 입·낙찰제도를 개발한다. 양질의 입찰자를 선별하는 것은 발주자의 고유 권한과 책임이다. 설계와 시공 이행 과정에서 발주자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는 것은 발주자의 무한책임 때문이다. 

발주, 입·낙찰, 계약의 전권을 제3자에게 위임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 중 역량이 미비한 사업자 선정이 부실과 사고의 원인이 됐다면 발주자는 당연히 면책을 요구할 것이다. 낙찰자 선택권을 가진 제3자는 변별력보다 가격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 감독권에 준하는 강화된 감리자의 미흡한 역량이나 직무 태만으로 인해 부실이나 인명사고 발생 시 발주자의 면책이 가능할까? 결론은 발주자는 입찰자 선정 및 계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제3자는 자신의 잣대로 입찰자를 평가 후 발주자에게 후보자를 추천할 뿐이다. 제3자가 입찰자를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할 경우 저가 입찰자를 선택하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추천은 하지만 최종 승인권자는 발주자다.

발주자는 감독권한을 감리자에게 위임해도 예산과 공기 변경에 대한 승인권한까지 줄 수 없다. 감리자에게 공사 중지권한을 줘도 공기지연이나 예산증가 원인이 되면 감리자가 권한을 행사하는 데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발주자는 이행 과정에 문제 발생 시 제도 문제를 꺼내 면책을 요구하게 될 게 뻔하다. 선진국이 발주자의 책임을 알파와 오메가로 보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에서 발주자가 계약자 선정을 제3자에게 일임하는 것은 극히 예외다. 대부분 일회성 사업인 경우다. 어떤 경우에도 발주자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진국 건설에서 제도라는 망치보다 산업체의 시스템을 중시하는 이유는 건설프로젝트 3각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생산결과에 대한 책임, 발주자는 공기 내 편성된 예산 범위 내 안전하고 요구되는 품질기준을 만족시켜야 할 사업관리 책임이 있다. 역할을 제3자에게 일부 위임할 수 있어도 책임은 위임하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가 미국에 조달청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미국 조달청(GSA)은 공공건물 공사의 발주자, 즉 완전한 사업관리자 역할과 책임을 지기 때문에 약 3만5000명의 상설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제도의 망치보다 산업의 시스템을 중시하는 것은 3각의 역할과 책임을 단순하기 위해서다. 법·제도가 더 센 망치로 변하기 전에 산업체가 자신의 고유한 생산관리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도면이나 시공을 제3자 검증 이전에 자체 내 검증하는 시스템 구축을 서둘라는 주문이다. 제3자 검증·감리는 자체 검증의 보완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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