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가운데 건설업계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유동성 문제 때문이다. 지금 유동성 문제의 한복판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있다. 위기 타개를 위해 건설사들은 고육책을 내놓는 중이다.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고금리가 지목된다. 지금 세계적으로 ‘뉴노멀’이 고금리다. 이 와중에 건설업 위기의 원인을 고금리로 한정하면 너무 일반적이다. 핵심 원인은 한국 건설산업의 특수성에 있다. 한국의 아파트 사업은 밑천 들이지 않는 장사다. PF 덕분이다. 원래 은행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돈 떼일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트 사업은 예외다. 은행이 더 공격적이다. 아파트 수요가 먼저 확보된 후 아파트 공급이 이뤄지는 식이어서 돈 떼일 걱정이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다.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며 ‘밑천 들이지 않는 장사’와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 방식에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호황일 때 불황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불황이 닥칠 때마다 엉뚱한 논쟁이 벌어진다.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지원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적 비일관성’이다. ‘잘 나가는’ 기업들이 말 그대로 잘 나가는 건 정부 지원을 받아서도 아니고 복권에 당첨돼서도 아니다. 경제는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시장에 고품질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게 최선이어서다. 즉,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만 파산하는 게 아니다. 소비 주체인 사람도 파산한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이들을 돕는 건 ‘인정’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을 베풀 때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경제주체들에겐 시장원리에 따라 각자 쏟은 노력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량기업과 불량기업이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을 알았다면 그 우량기업은 애초에 노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노력’이 최선이 아님을 알아챈 경제주체들의 향후 전략 선택이다. 노력이 최선도 아닌 마당에 힘들게 노력할 기업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정’은 항상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항상 인정이 베풀어지면 차후엔 역설적이게도 인정을 베풀 경제주체들이 사라지고 만다. 시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 땀과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면 그건 시장원리가 아니다.

정부는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지원을 시사하면서 ‘옥석 가리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게임이론에서 옥석 가리기는 큰 의미를 지닌다. ‘스크리닝(screening)’ 즉, 선별작업인 것이다. 제대로 된 옥석 가리기를 위해 건설사의 평판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평판이 높은 기업들에겐 당근을, 그리고 평판이 낮은 기업들에겐 채찍을 가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건설산업엔 평판이라는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정보 비대칭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설계조차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젠 건설사들도 사고 전환이 필요할 때다. 정부는 지원 전에 분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산업들은 내재적 특수성 또는 외부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처 방식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여론에 떠밀려 ‘울며 겨자 먹기’ 또는 ‘선심 쓰기’식 정부 지원도 많았다. 이젠 그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그 기준은 바로 평판이 돼야 한다. 평판은 신뢰와도 연관이 깊다.

신뢰는 직무윤리로부터 나온다. 건설사의 직무윤리는 뭘까? 쾌적한 거주 환경 제공일 것이다. 이젠 아파트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진지하게 따져볼 때다. 한국 아파트는 스트레스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층간소음 칼부림’과 ‘주차장 칼부림’이 만연한 이유다. 건설사들도 이윤만 쫓으려 하지 말고 국민의 삶의 질 수준 향상에 기여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게 민생이다.

줄도산을 막기 위해 정부 지원은 ‘울며 겨자 먹기’라고 치자. 하지만 공짜는 없다. 고품질의 건설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들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전국 아파트 안전 점검 및 층간소음 실태 그리고 주차장 관리 상태 등을 모두 파악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게 평판 정보가 된다. 건설사들도 좋은 평판을 쌓기 위해 스스로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 쾌적한 거주 환경을 제공하면 평판이 절로 쌓인다. 층간소음을 줄이고 주차장을 넓히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유동성 위기가 또 발생할 때 정부는 그렇게 노력해 온 기업들을 선별해 지원하면 쉽다. 그 경우 정부 지원은 시장기능을 돕는 역할을 한다. 세금은 그렇게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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