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을 세계 선거의 해로 보는 이유가 있다. 70여 국가에서 42억명이 선거에 참여한다. 얼마 전 대만 선거에서 서방의 지지를 받는 민진당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는 물론 미국과 서방 각국의 관심을 받았던 선거였다. 우리도 4월에 제22대 총선을 치른다. 국민의 최대 관심사로, 출마자는 물론 여당과 야당 모두 선심 경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공약(公約)은 상당수가 선거가 끝나면 공약(空約), 즉 허언으로 귀결되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출마자들이 내놓는 공약 상당수는 각종 인프라(사회간접시설) 구축과 관련돼 있다. 전국을 공사현장으로 만들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인프라는 공공재다. 공공재는 개인이나 특정 민간기업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인프라는 국가재정으로 신축되고 유지·관리된다. 구축된 인프라 재고량이 늘어나고 국민 개인소득이 높아질수록 국가의 재정여력은 저하된다. 국가총생산액(GDP)이 커질수록 재정규모가 늘어난다.

문제는 재정규모가 아무리 늘어나도 인프라에 투자할 재량예산 비중이 줄어드는 게 보편적이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 대부분이 경험했던 부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인프라 신축이나 유지·관리에 부족한 재정을 대체하는 민간자금을 끌어들이려 한다. 물론 일본과 같이 재정투자 원칙을 고수하는 나라도 있다. 인프라 신축에 과도한 재정투자로 인해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이 GDP 대비 2.6배를 넘겼다. 재정운영 부실이 낳은 결과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는 재정건전성 확보다. 예산증가를 최대한 억제하고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국가예산은 크게 의무지출(경직성경비)과 재량지출(임의운용)로 나뉜다. 의무지출은 국가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유지관리비 성격이다. 인프라 관련 예산은 재량지출에 해당한다.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서는 재량지출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재량지출예산 중 대표적으로 높은 비중으로 인프라 예산(흔히 SOC예산)이 꼽힌다.

국회예산정책처 통계에 의하면 재량예산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추세가 역력하다. 미래로 갈수록 우리나라의 재량예산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선진국형으로 변해 버렸다. 불가피하게 인프라에 민간자본이 활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 삶의 질과 경제번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선택 여지가 없다.

민간자금은 공공자금과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 공공재정은 공익을 앞세우지만, 민간자금은 수익을 앞세운다. 교통인프라와 에너지인프라, 수자원인프라를 공급하고 유지·관리·운영하는 공공기관 모두가 민간기업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작게는 수십조원, 많게는 백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다. 기존 사용료로 부채가 감소될 가능성이 없다. 국민은 공공재가 수익을 챙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이 공공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민간투자도로가 공공도로보다 비싼 요금을 징수하면 강한 분노를 분출하기도 한다. 민간자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감추지 않는다.

민간자본 투자를 활용하기 위해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민투법)’을 제정했다. 민투법 제1조에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인프라 확장·운영을 도모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동법 제45조(감독·명령)에 주무관청이 민투시행자(SPC)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저해하지 않도록 시행령 제35조(감독·명령)에 부실공사·부실운영에 국한하도록 제한돼 있다.

민투법 도입 취지와 완전히 다르게 운용되고 있는 게 민투사업의 현실이다. 예산만 민간자금이지 운용은 재정사업에 의한 도급계약방식과 다를 바 없이 돼 버렸다.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완전히 박탈돼 있다. 주무관청이 대리인으로 공사나 공단을 지정해 도급사업의 발주자 역할을 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한다. 애매한 SPC(발주자)는 계약 시에 등장하고 시행단계에서 실체가 없다. 투자자로 참여한 시공사는 주무관청의 대리인을 상대하기 위해 따로 사업단을 구성한다. 대리인이 CM(건설사업관리)사를 선정해 발주자 역할을 한다. 사용료가 공사비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SPC 혹은 투자자그룹이 공사비를 늘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민간자금 투자자가 인프라 완공 후 운용수입에 관심을 두지만 현 SPC 투자그룹은 건설수익에만 관심을 두는 완전히 상반된 구조다. 이런 상태로는 글로벌 금융 혹은 투자기관이 국내 민투사업에 매력을 가지기 어렵다. 선진국형으로 가야 하는 인프라 구축과 운용을 기대한다면 민투사업의 구도를 반드시 혁신해야 한다. 재정사업을 확대하려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증세나 사용료를 대폭 상향시켜야 한다. 재정여력을 메꿀 방법은 민간자금 활용 외 대안이 없다. 민간투자로 인프라 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투법 제정 취지에 맞게 지금의 입구관리에서 출구관리로 전환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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