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대치2단지 등 리모델링 조합 해산 문제로 내홍
산본·평촌·분당 등서도 리모델링 중단 및 지연 속출
국토부 “기존대책 있기에 지금은 촉진책 고민 안 해”

정부가 1·10대책으로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한 이후 전국 곳곳의 리모델링 추진단지에서 갈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리모델링 촉진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리모델링 단지들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조합 해산총회를 요구하는 소유주들과 이에 저항하는 조합 집행부 사이의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는 16년 넘게 사업이 진전되지 않자 최근 소유주들이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해 온 대치2단지는 지난해 6월 조합이 2016년 계약한 시공사와의 계약 해지를 추진하다 소송에서 패소해 112억원을 배상했다. 소송 과정에 새 시공사를 선정했지만, 결국 이곳도 시공권을 포기하면서 사업이 좌초된 상태다.

또 송파 거여1단지는 금리 인상, 공사비 상승에 따른 분담금 문제 등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해산됐고, 송파 강변현대아파트도 지난 2022년 5월부터 시공사 선정에 나섰으나 건설업체들이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최근 조합 해산 절차에 돌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76곳 중 23곳이 조합설립인가 이후 3년이 경과해 올해 안에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기권에서도 리모델링 사업 취소 및 지연이 속출하고 있다. 군포시 산본8단지는 입찰에 참여했던 시공사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포기했고, 용인시 ‘현대성우8단지’는 주민들이 사업 동의를 철회하면서 리모델링 사업 승인 신청이 취하됐다.

안양시 평촌신도시에서도 은하수마을청구·샘마을대우·한양 등이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했다. 이외에도 성남시 분당 ‘한솔마을 5단지’는 소송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고, ‘매화마을 1단지'도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잠정 중단됐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철거하는 재건축과는 달리 골조를 유지한 채 증축하는 방식으로, 사업 진행이 빠르고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에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거나, 용적률이 높고 사업성이 떨어져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12월 통과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과 그 후속 시행령을 통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한 특별법 대상 지역을 전국 108곳으로 확대하고, 허용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1.5배까지 늘렸다. 또 올해에는 1·10대책을 통해 안전진단을 받기 전에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에 리모델링 단지들에서는 불만이 쏟아졌다. 서울시 리모델링 주택조합 협의회(서리협)는 지난달 11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1·10 대책은 주택 정책임에도 전국의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의 고(高)용적률 단지의 경우 종상향이 되더라도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하다”며 “전국의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약 140여개 조합, 약 120여개 추진위원회가 있는데, 윤 정부는 40만가구, 1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공동주택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한편 정부에서는 이러한 업계의 불만 제기에도 리모델링 촉진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1·10대책 이후 리모델링 단지는 사업 진행을 멈춘 상황인데 리모델링 촉진 정책은 고려하는 것이 없는지’를 묻는 말에 “기존 대책들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지금 단계에서 리모델링 촉진 정책은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어 “1·10대책을 발표한 것은 재건축·재개발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안전진단 요건을 완화한 것으로, 모든 주택들을 다 재건축하라는 건 아니다”라며 “리모델링으로 가든 재건축으로 가든 입주민들이 합의해서 하면 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기존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는 앞으로 재건축 선회를 위해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당초 리모델링을 선택했던 단지들의 경우 재건축을 추진하기엔 높은 용적률과 낮은 대지지분으로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재건축 선회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시 내 4217개 공동주택 단지 중 3096개(세대수 증가형 898개, 맞춤형 2198개)는 재건축 사업이 불가능한 리모델링 대상 단지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비슷한 시기에 과도하게 몰리게 되면 사회적 비용 낭비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리모델링과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재건축 진입 문턱 완화로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 선호현상이 높아질 전망”이라며 “특히 비슷한 시기 다수 지역에서 재건축 사업이 일제히 진행되면, 사업 후반기 이주·멸실이 한꺼번에 몰리게 될 텐데 이는 임대차 시장의 가격불안 요인이 되거나, 리모델링 또는 대수선보다 자원 및 사회적 비용 낭비 우려를 지적하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도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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