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건축 행위는 원래 현재 지향적 실천이었다. 당장 비바람을 피하는 집을 지어야 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길을 챙겨내는 현재적 실천이었다. 현재의 편의를 도모해주는 실천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실천에 머물러 있지 않다. 미래를 위한 투자 개념의 틈입으로 건축이나 건설 실천의 가치는 현저하게 바뀌었다. 집을 사는 일은 몸을 뉠 곳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교환가치를 충분히 감안하는 실천이 됐다. 아니 오히려 미래의 교환가치를 더 챙기는 미래적 실천으로 바뀌어 갔다.

미래적 실천으로 바뀐 후 건설, 건축 행위가 대중들의 일상과 기가 막히게도 일치하던 때도 있었다. 대중이 지금 현재보다 미래에 더 가치를 부여하곤 했을 땐 건설, 건축 행위가 미래 지향적이라는 사실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해서 집 장만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지라며 미래를 긍정적으로 사고했을 때 건설, 건축 행위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호황을 누렸다. 건설, 건축 행위가 현재적 실천에서 미래적 실천으로 연착륙이 이뤄지던 때가 있었고 그때야말로 든든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건설, 건축업의 이른바 ‘좋은’ 시절이었다.

그 좋던 시절은 길지 않았다. 대중의 시간 인식에 변화가 생기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미래의 행복은 현재의 행복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대중 인식의 변화 순간을 맞게 된다. 일군의 학자들은 이를 시간할인효과(Temporal Discount Effect)라고 부르며, 현대인들이 지닌 지배적인 심리 특성으로 손꼽았다. 대중에게 생긴 그런 변화를 건설, 건축 행위는 비켜가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건설, 건축 행위는 대중의 변화에 맞춰 몸을 추스르며 다시 현재 지향적 실천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찾아온 건설, 건축 행위의 현재적 실천은 과거에 있었던 현재 지향적 실천과는 모습을 달리했다. 무엇보다도 실천의 사용 효능에 그 방점을 두지 않았다. 현재적이면서 투자에 그 가치를 ‘몰빵’했다. 당장 집 장만을 해야 하고, 기회를 놓치면 손해 본다는 담론이 건설, 건축을 휘감았다. 지금을 놓치지 말고, 시차에 편승한 이익을 챙겨야 한다는 기운이 팽배했다. 그래서 건설과 건축에 로또의 비유가 넘쳤다. 기다림이나 미래의 계획 따위가 들어설 틈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긁어서 행운을 확인하거나 내일의 추첨 결과로 희비가 엇갈리는 방식으로 건설, 건축 행위의 실천 방향은 선회했다. 

이처럼 건설, 건축 행위는 현재적 가치에서 미래적 가치로, 다시 현재적 가치로 되돌아오는 순간을 거쳤다. 우리 손에 들어온 변신의 손익계산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건설, 건축 행위가 대중에 휩쓸리면서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냈을까. 시간할인효과가 광범위해지면서 미래는 더욱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당장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사회적 낙오를 두려워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만이 갖는 개성적 미래 설계 대신 주변에서 벌이는 현재의 사회적 실천에 합류하는 대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적금 들고, 시간 계획 맞춰 결혼하고, 자식 갖고, 안정을 챙기겠다는 미래지향적 시간 실천은 매력을 잃고 말았다. ‘영끌’과 ‘빚투’의 초조감 팽배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건설, 건축 행위는 인간이 벌인 가장 오래된 실천 중 하나다. 긴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유 체계를 바꾸기도 하는 강력한 사회적 제도이다. 대중과 호흡하기도 하지만 때론 선두에서 선도도 해야 할 책무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한국의 건축, 건설 실천은 자신의 시간 감각을 능동적으로 챙기는 순간을 갖지 못했다. 또 그럴 조건과 역량도 갖질 못했다. 그래서 대중에 휩쓸렸거나 다른 경제적 실천에 휘둘려 수동적인 변신을 거듭했다는 반성이 더 어울려 보인다.

자신의 미래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실천의 영역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현재도 있고, 미래도 공존하며 그 안에 다양한 가치를 담아야 하는 실천영역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인식에 미치지 못했다. 다양한 시간 영역에 걸치는 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일에 소홀한 탓이다.

늦었지만 건축, 건설 실천의 시간적 감각을 다시 챙겨보고 그 안의 가치의 스펙트럼을 챙겨볼 때다. 새로운 인재와 기술 그리고 유익한 정책이 흘러들어오기 위해서는 개성 있는 시간 감각을 수립하고, 제 정체를 드러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온 젊음과 열정을 퍼부어 사회적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다며 지켜왔던 건설인들의 긍지들을 모두 상실하는 근본 없는 공간으로 그치는 운명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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