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의 본명은 김영일이다. 그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길을 걷다 상점 간판마다 작게 ‘지하’라고 써진 걸 발견했고, 자신의 필명을 ‘지하’로 정했다고 한다. 시인다운 통찰이다. 한국은 지하를 지향한다. 주한미국 대사관 문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은 ‘서울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최대도시가 아니라 곧 한국’이라고 썼다. 서울은 지하를 지향한다. 세상에서 서울처럼 지하철이 촘촘하게 깔린 도시는 없을 것이다.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지하도 등 지하로 내려가는 한국은 좁은 영토를 반영한다.

총선을 앞두고 온 나라 구석구석이 ‘인기몰이’ 정책들로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철도 지하화’ 사업은 장밋빛 기대를 품게 한다. 도심을 단절시키는 철도는 큰 혼잡비용을 발생시킨다. 가능하면 철도를 지하로 내려보내고, 지상 부지를 개발하면 긍정적인 ‘경제 외부성’이 나타난다.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철도 지하화 사업을 밀고 있고, 국회에서 ‘철도 지하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수도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전국 주요 도시들의 철도 지상 구간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 특별법 통과에 가장 큰 기대감을 드러내는 쪽은 수도권이다. 특히 철도 지하화 사업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서울역 근처는 들뜬다. 지하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그리고 KTX 등 여러 노선들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GTX, 신분당선, 신안산선 등이 추가된다. 그 노선들이 모두 지하로 들어가 통합 운영될 수만 있다면, 혼잡비용도 줄이고 승객들 편의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지상 부지 개발을 통해 가치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엄청난 비용이다. 정부는 약 50조원 정도를 생각하는 듯하다. 사업 기간도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하화 사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사업비용에 혼잡비용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용을 제한 편익은 ‘J’ 곡선 형태를 띠게 된다. 즉, 시차를 두고 편익 증대가 실현되는 것이다. 사업 규모를 최소화해야 하는 근거다.

하지만 옥석 가리기는 꼭 필요하다. 철도 지하화가 철저히 민간주도 사업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개발이익이 충분한 곳과 충분치 않은 곳이 자연스레 구분될 수 있다. 재원 마련을 위해 민간이 먼저 나서도록 하고, 그다음 개발 필요성을 선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다. 개발하려는 땅들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선형부지이기 때문이다. 선형부지는 사업성이 떨어진다. 그 사례들은 전국에 많다. 꼭 지하화가 아니더라도 도심 외곽으로 철도 이설의 경우들이다. 큰 기대감을 갖지만 실망도 크다. 도심 속 옛 철로가 개발되지 못한 채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나마 숲길로 만들어 쓰는 게 최선이다. 숲길은 좋지만 숲길에 투자할 이들은 드물다. 그러한 까닭에 외국에서도 기존 철도를 완전 지하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분 구간을 지하화할 뿐이다. 

문제는 또 있다. 철도 지하화 사업으로 인한 수혜자들이 한정된다는 것이다. 주로 그 개발부지 주변에 살거나 자산을 보유한 경우다. 자산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공적 예산은 항상 제한적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혜택이 소수에게 돌아간다면 이 또한 논란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지방소멸’과 ‘균형발전’이 한국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외침은 요란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이쯤에서 한 번은 생각해 볼 게 공간균형이다. 철도 지하화는 도심의 혼잡비용을 덜어주는 측면이 있다. 이를 통해 그 도시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된다. 그 혼잡비용은 어디서 왔을까? 지방소멸과 관련 있다. 수도권의 민원은 재빠르게 해결된다. 수도권이 더 살기 좋아지는 이유다. 거주 유인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지방 거주민들은 살기 좋은 수도권으로 더 이탈한다. 그에 따라 수도권 인구가 더 많아진다. 혼잡비용이 더 커진다. 민원이 더 발생한다. 정치인들이 더빠르게 반응한다. 지방 거주민들이 더 이탈한다. 지방소멸이 더 가속화된다.

추억의 TV 드라마 <전원일기>의 공간적 배경 양촌리는 서울 근교였다. ‘소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양촌리는 없어진 지 오래다. 모두 도시화됐고 지하철이 뚫렸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되새길 게 있다. 인프라는 주로 SOC 즉, 사회간접 자본을 말한다. 한국이 신성장 동력을 찾고 삶의 질 개선을 위한다면, 사회간접자본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자본’에도 관심을 쏟을 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강조한 바다. 바로 신뢰(trust)다. 사업비 규모가 아니라 그 사업비 집행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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