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하나도 품질을 따지고 사는데 건물을 가격이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매해서야 되겠습니까? 공공건설부문에서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얼마 전 건설산업비전포럼 주관으로 열린 ‘영국 건설 10년 성과와 한국건설산업 선진화 추진전략’ 국제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한 영국 정부 상무청(OGC·Office of Government Commerce) 건설담당관 존 이오아누씨의 이 한마디는 이제는 ‘건설이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가치 중심의 건설이란 무엇인가? 이오아누씨의 말을 한 번 더 들어보자. “가격뿐 아니라, 디자인과 에너지 절감 능력, 유지 및 관리의 편의성, 친환경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된 건설이 가치 중심의 건설”이다. 당연히 가치 중심의 건설에서는 가격이 절대적 고려 사항이 되지는 않는다.

최저가낙찰과 최고가치낙찰제

우리가 가치 중심의 건설에 주목하는 것은 공공공사 발주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최저가낙찰제 때문이다. ‘무조건 저렴하면 된다’는 최저가낙찰제의 폐해와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이 난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지만, 이오아누씨의 지적은 그것을 촌철살인으로 말해준다. 그는 “영국에서는 최저가낙찰제가 사라진 지 오래”라며 그 이유로 “최저가 낙찰제는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일 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며, 국민들의 편의를 증진하는 데도 크게 미흡한 제도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군부대 막사를 지을 때는 군인들이 힘이 세고, 활동량이 많은 것을 감안해 문고리 하나라도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최저가낙찰제는 이런 점을 검토할 수 없게 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주제발표에 나선 영국 건설혁신센터(CE·Construction Excellence)의 존 워드 회장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워드 회장은 “최저가 낙찰비용은 추가비용이 청구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공사비는 낙찰가보다 더 든다”며, “최저가낙찰제를 추방한 이후 공공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1999년 인부 10만명당 1천354건에서 2007년에는 865건으로 줄어드는 등 생산성과 이윤 및 소비자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최저가낙찰제가 아니라 최고가치낙찰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싸다고 해서 비지떡을 사서는 안된다”는 것과 같다.

영국의 건설혁신 참고해야

영국이 10년 전인 1999년 정부 주도로 대대적 혁신에 나서기 전 영국 건설산업의 모습은 지금 우리 건설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영국 건설산업은 경제주체들 간의 충돌과 건설업자들 사이의 끊이지 않는 고소 고발, 낮은 생산성과 높은 안전사고율, 뒤떨어진 경쟁력 등으로 가장 낙후된 산업분야였다. 지금 우리 건설산업의 현주소가 10년 전 영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 건설산업이 앞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영국의 건설혁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최저가낙찰제 폐지가 그 일차적 목표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건설정책 당국에서는 그럴 듯한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산 10% 절감이라는 미명 하에 이 낙후된 제도를 더 옹호하려는 움직임만 포착된다. 앞으로 어떤 대가를 더 치러야만 우리 건설산업이 선진화할 것인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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