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건설신문사에 들어오기 전 내 직업은 홍보인쇄물 제작 전문 광고기획사 대표였다. 25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잉크와 종이만 만지다보니 딱히 달리 손을 대볼만한 사업이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5년을 채 못 버티고 다시 봉급생활자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판을 걷기 전 마지막 클라이언트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였다. 이 회사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에게 보내는 뉴스레터 제작을 온갖 인맥을 동원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따냈는데 계약 후 막상 따져보니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종업원 급여는 줄 것 같았고, 국내 굴지의 건설사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으면 다른 영업도 쉬울 것 같았다. 1년 계약이었지만 잘만하면 3년은 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다가 보면 동영상 제작이나 ‘찌라시’라고 불리는 아파트 브로셔나 분양 판촉물 같은 큰 덩어리도 따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타절하는 심정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노무현 정권 막바지에 쏟아진 각종 부동산 규제조치로 주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클라이언트의 분양물량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내가 맡은 홍보물 물량도 자꾸 줄어들었다. 매출이 줄어드는 게 고정비용도 못 맞출 처지가 됐다. 계약과 다르다고 따질 생각은 애초부터 할 수 없었다.

‘갑’이 어디 보통 갑인가? 나 정도의 ‘을’이 문밖에 줄을 서고 있을 터인데…. 실무자를 만날 때마다 단가인상이라도 해줬으면 하고 울어도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대놓고 면박을 주지는 않았지만 ‘어따 대고 단가인상이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정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만 두겠다고 통보해버렸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다. ‘손해가 있더라도 계속하는 게 옳지’라고 하다가 ‘아까지’가 쌓이면 ‘하루라도 빨리 터는 게 살 길이다’고 뜬 눈으로 밤을 새면서 생각을 뒤집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클라이언트를 직접 찾아가서 통보를 했는데, 통보 며칠 전에 실무자를 불러 골프접대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 정도로라도 ‘정중히’ 접대를 해두지 않으면 일을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 계약기간 위반이라느니 하고 나올까봐 잔머리를 굴린 셈인데, 그만 두는 마당에도 ‘갑’이 그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그 심정을 누가 알까마는.

초저가로 일을 따낸들…

논설을 써야 하는 이 난에 내 신상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9월15일자 전문건설신문 15면에 실린 〈‘정중한 공사타절’이 생존전략?〉이라는 기사 때문이다. 전문업체들이 초저가단가 때문에 하도급 받은 공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계약만 하고 착공을 안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을 할수록 적자폭이 늘어나 아예 중간에 공사를 그만두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공사를 타절하면 나중에 같은 원청사에서 일을 받는 건 물론이거니와 업계 내에서도 신인도가 떨어져 다른 일 따기도 힘드는데,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든 날들을 보냈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살기 위해 벌인 일이 죽는 길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완전히 죽기 전에 명이라도 붙여보려고 정중하게 타절을 한 것일까? 나는 그 일을 그만 두고 꼭 한 달 뒤에 종업원들을 내보내고 사무실을 거뒀다. 그리고 몇 달 지나서 전문건설신문사로 들어왔다. 지금 마음은 편하지만 아직 모르는 게 있다. 판을 거둔 내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하지만 전문업체들이 타절할 때 심정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이상이라는 것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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