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생활경제

보험(保險)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세요?

‘보험, 그거 꼭 필요한 거지’, ‘보험 들어놓은 게 큰 도움이 됐어’ 등의 긍정적인 반응도 있을 것이고, ‘그거 아무 짝에 쓸 데 없어’, ‘보험회사는 순 사기꾼들이야’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을 테지요. 보험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대체로 개인이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나 주위에서 보험의 혜택을 받은 경험이 많으면 대체로 보험에 대해 긍정적이고, 보험회사와 분쟁을 하거나 중도해약으로 원금손실을 본 경험이 많으면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판단은 개인의 경험에만 의존한 이른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지요.

재무설계사의 입장에서 보험은 복잡다단한 현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보험제도운용자(보험사)와 보험제도가입자(고객) 간의 관점이 다를 때 이해관계가 발생하고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을 직접 운용하고 있습니다만 하물며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제도에서도 국민과의 분쟁이 발생하는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보험제도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게다가 일부 보험설계사들의 잘못된 영업방법도 보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는 데에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각설하고, 필자는 보험을 호불호의 이분론적 관점이 아니라 효용가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품을 구매할 때 항상 그 상품에 대한 기대값을 무의식 중에 산정하는데, 동일한 가격의 동일한 상품이라도 이 기대값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여기서의 기대값이란 그 상품을 구매한 경우에 본인이 누릴 수 있는 편의와 혜택, 심리적 만족감 등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을 필자는 효용가치라고 표현하겠습니다.

한 줄에 2,000원짜리 김밥이 있을 때 배고픈 사람은 기꺼이 그걸 사서 먹겠지만 이미 배가 부른 사람이 그 김밥을 사는 것은 불필요한 지출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그 상품의 가격과 효용가치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자가 얼마 전에 서울시 은평구 관내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3시간 동안 경제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예를 한번 떠올려봅니다.

“자, 여러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3일째 걸어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배고픈 건 둘째 치고, 너무 덥고 목이 말라서 죽기 일보직전이야. 근데 놀랍게도 저 앞에 가족마트의 녹색간판이 보이는 거야.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서 냉장고에 들어있는 시원한 생수 한 병을 꺼내 들었어. 근데 더욱 놀라운 건 생수 한 병이 100만원이래. 동네에 있는 가족마트에선 1,000원이면 살 수 있는데 말이야. 다행히도 호주머니 안에 아빠의 신용카드가 들어있어. 자, 여러분은 어떻게 할래?”

아이들답게 호들갑스럽고 다양한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너무 비싸요’, ‘그걸 누가 사 먹어요’, ‘목말라 죽겠는데 어쩔 수 없이 사 먹어야죠’, ‘아빠한테 혼나요’ 등등.

자,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설령 나중에 마트 주인을 악덕상인이라고 욕하거나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할지언정 일단은 생수를 사서 죽을 듯한 목마름을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요? 1,000원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생수를 100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더라도 그게 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사서 마시지 않을까요? 이 때 가격(100만원)과 효용가치(목숨을 부지)를 비교하는 과정이 우리의 뇌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납니다.

다른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또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100만원짜리 와인이 알코올중독자인 거지 손에 들려있고 그는 와인의 가격을 모른다고 가정합니다.

필자가 거지에게 가서 “아저씨, 제가 그 와인을 좋아하는데 소주 한 박스 사드릴 테니까 그거 저 주실래요? 그 와인 어디 가서 팔수도 없잖아요.”라고 제안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마도 십중팔구는 동의하지 않을까요? 왜냐면 그 와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소주를 한 박스나 살 수 있는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필자의 제안을 통해 깨닫게 되었을 테고, 거지에게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소주 한 박스가 2만원쯤 한다고 치면 100만원짜리 와인과의 가격비교는 의미가 없겠지요. 하지만 거지에게 소주 한 박스의 가치는 꽤 비싸 보이는 와인 한 병의 가치보다 더 크게 느껴질 테고, 따라서 필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두 가지나 예로 들었지만, 이렇듯 같은 가격의 동일한 상품이라도 그것의 효용가치는 구매하는 사람의 상황이나 판단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원론적으로는 가격과 가치가 동일한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실생활에서는 가격과 가치가 동일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상품을 구매하든지 그 상품의 가격과 효용가치를 비교해서 가치가 더 큰 경우에만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구매행동이고 대단히 많은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원칙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어떠한 행동을 할지 말지를 판단해야 할 때에도 이 원칙을 많이 준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행동을 하는데 드는 수고와, 그 행동을 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비교해서 할지 말지를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무언가를 판단하는 매 순간마다 이러한 가치비교가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준현 칼럼니스트(국제공인재무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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