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는 강우특성·지형·지반 등 복합작용
비전문가가 사방댐 설계·시공땐 재해 키워
전문가 면밀 조사 통한 저감대책 주력해야

“우리 구에 위치한 공원에 산이 있는데 안전한지 봐 주십시오.”
“우리 시에 있는 산이 산사태 위험 1등급이라는데 내년도 예산을 얼마나 신청해야 할까요?”

우면산 산사태 이후 우리 공단에 가장 많이 걸려오는 민원전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산사태 위험 지구의 자세한 지형이나 지반상태 혹은 경사, 면적, 용도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는 답변하기 어렵다. 사실 담당공무원인 그들 자신도 그런 정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담당자가 이런 질문을 할 정도라면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어느 정도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듯이, 우리나라의 비탈면 설계기준(국토해양부 제정)은 폭우에도 안전하도록 제정되어 있다. 비탈면 설계기준의 적용을 받는 일반국도나 고속국도는 이번 여름 쏟아진 폭우에도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산림이 우거진 자연비탈면에서 더 많은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최근에 발생한 산사태와 같이 경사가 급하고 토층이 얕은 우리나라 산림의 경우, 녹화정도는 산사태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산사태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산에 나무를 많이 심는 것만으로는 산사태를 예방할 수 없다는 뼈아픈 실례가 되었다.

오히려 산사태의 위험은 기상조건에 따른 강우 특성, 지형조건에 따른 물의 집중, 지반의 강도와 투수 등 지반공학적인 특성, 토지의 이용 특성 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 분야의 전문가에 의해 그 위험도가 조사되어야 하며 그 대책 역시 수리 및 수문, 지반 및 구조 전문가의 철저한 지반조사와 공학적 계산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자연재해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사방사업(산사태의 예방 및 복구 등)은 국토교통성 수관리·국토보전국 산하의 사방부에서 관장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산사태와 관련, 이러한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참여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관련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면산과 춘천 지역 산사태 이후 토석류에 대한 대책으로 사방댐 건설이 제안되고 있는데, 사방댐 역시 산사태 및 토석류를 막을 수 있는 수많은 대책 중의 하나인 사방시설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 오히려 다른 사방시설에 비해 자연생태계의 피해가 큰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치 산사태나 토석류를 예방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되고 알려지는 것에도 큰 문제가 있다.

산사태 및 토석류 발생 가능성이 있는 비탈면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우사상, 지형 및 지반특성에 대한 정밀 조사에 근거해 발생가능한 토석류의 양, 구성물질, 발생에너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사방시설의 형식을 정하고 설치할 위치와 규모 등을 결정하여 설계?시공해야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이러한 면밀한 검토 없이 비전문가에 의한 사방댐 설계·시공이 남발될 경우, 오히려 우면산 재해보다 더 큰 재해를 야기할 수도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자연파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점은 산사태를 힘으로만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기후변화 등을 고려할 때 산사태와 같은 자연현상을 인간의 힘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산사태 발생 가능 대상과 면적은 너무나 광대하여 모든 대상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도 무리가 있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가 없는 산사태까지 한정된 예산을 투입해가며 모두 막을 필요는 없다.

선진 외국의 경우에도 산사태의 발생자체를 막기보다는 피해를 저감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그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일례로 미국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의 경우 “Let It Burn Policy”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산불이 발생하면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생물다양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산사태 역시 인간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가 오지 않는 한 자연에 맡겨두도록 하고 있다.

모든 산사태를 막겠다는 비현실적인 생각보다는 전문가들의 면밀한 조사를 통해 최대한 자연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피해를 저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때이다. /김경수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