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주 양적 팽창 불구 전문가 태부족
국내 제도와 기술자 평가 시스템에 문제
글로벌기준과 호환되게 게임룰 만들어야

밖으로는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의 해외건설이지만 해외시장에 진출한 기업 내부에는 소화 역량 문제가 심각해져 있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해외시장 확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기업내부는 수주 확대의 전제 조건이 되는 소화력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정부공사에서 기술자를 평가하는 잣대로는 만점자가 7만명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 기업들이 찾는 글로벌 전문가 추가인력 5000명을 채우기도 힘들다. 건설인력 수급 상황은 ‘양적 공급 초과, 질적 공급 미달’로 극단적인 불균형 상태다. 내적으로는 실직자가 늘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이다.

국내 건설기술자 수급이 불균형 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는 제도적인 차이와 관행, 그리고 기술자 평가시스템에 있다. 우선 제도적인 측면이다. 국내 공공공사에서는 법과 제도가 계약서나 도면·시방서보다 우선이다. 다시 말해 건설현장이 계약서보다 법·제도가 지배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건설현장 소화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해외 현장의 경우 계약서가 최우선으로, 모든 업무가 계약서에 명기된 업무범위 소화를 위해 시방서와 도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현장에 투입된 기술자가 현지국의 법과 제도를 몰라도 계약서와 기술적인 문서 해독 능력만 있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계약문서 외적인 법·제도 해석과 외부 간섭으로 인해 국내 현장에 투입된 기술자의 시간 투입이 현장 공사에 전념하는 비중보다 훨씬 많다. 이런 결과는 자연스럽게 기술자들의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린다.

이에 비해 해외건설현장의 경우 건설공사 소화를 전담함으로 인해 국내 현장보다 인력투입이 적어도 문제가 없다. 외국전문가들이 국내 공공공사 현장에 기술·관리 인력 투입 규모에 놀라는 것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공공공사에서 기술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도 인력수급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건설공사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력의 원천은 지식과 경험에 의한 숙련도와 완성도다. 기술자 역량 평가의 주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숙련도와 완성도를 평가한다는 의미는 주관적 평가에 의한 상대평가가 되는 셈이다.

국내 제도상의 기술자 역량 평가는 학력과 경력, 자격증 등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한다. 당연히 만점자가 양산될 수 있는 구조다. 국내 건설기술자 중 만점자가 양산되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제도상 만점자 때문에 국내 공공시장에서 ‘PQ인력’과 ‘현장인력’으로 구분되는 것도 국내 공공공사만의 기현상이다. ‘영업인력’과 ‘실무인력’이 구분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당연히 만점을 받은 기술자가 역량개발을 통해 기술의 숙련도와 완성도를 쌓아야 할 동기가 없어진다.

문제의 심각성은 제도에서 평가하는 인력과 기업에서 평가하는 인력의 역량의 잣대 차이다. 외국 공사의 경우 사업책임자 혹은 주요 기술책임자에 대해서는 해당 회사에서의 최소 근무기간을 명시한다.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해당인력을 일정기간 보유할 만큼 회사와의 연결성도 평가 잣대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해 사업만을 위해 책임자급 인력을 스카우트하여 투입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기술역량 부족으로 보는 것이다. 회사의 평판도와 사업 실적에 대한 또 다른 잣대로 작용하는 것이다.

건설현장에 투입된 책임자급 기술 및 관리인력이 공사 소화에 시간을 50%도 전념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PQ만점자만을 요구하는 ‘반쪽기술’로는 글로벌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가가 양성될 수 없다. 정부는 2014년까지 해외건설공사 수주액을 1000억달러 목표하고 있지만 전문가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으로서는 대책 없는 수주액 확대에만 몰두할 수 없다.

줄어드는 내수시장을 해외시장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다만 소화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로는 실현이 어렵다. 국내 공공 및 민간시장은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당분간 줄어 들 수밖에 없다.

국내시장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과 대조적으로 해외시장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늘어날 가능성이 남아있다. 내수시장과 달리 해외시장은 경쟁방식도 글로벌화다. 국내법과 제도로는 경쟁할 수 없다. 게임의 법칙도 글로벌시장과 호환이 가능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8월 대구에서 열렸던 세계육상대회에서 세계최고 기록 보유자인 마이클 볼턴 선수가 단 한 차례 부정 출발로 인해 실격 처리됐다. 본인으로서야 불만이 크겠지만 게임의 법칙은 냉혹한 것이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모든 스포츠경기도 공인된 국제 룰을 따르는데 예외를 두지 않는다.

해외건설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표준을 따라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대외경제 의존도가 90%를 넘는 상태에서 한국식 주장은 너무 동떨어졌다. 시장 수요에 맞춘 인력 양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복남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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