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낙찰 개선’ 본질 대신 확대여부만 논쟁
 법·발주자 역할 등 국제기준 괴리는 뒷전
 제도 작동할 기반환경 구축이 선결돼야

2년간 유보된 최저가낙찰제에 대한 논란이 금년 국회회계기간 중 내내 이슈화가 될 전망이다. 논란이 건설공사의 입·낙찰 방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최저가낙찰제 확대 주장과 반대 주장만 보인다.

그런데 서비스 구매자인 발주자 역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발주자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대외 명분을 중시하는 발주기관장은 최저가 확대를 주장하지만 정작 최저가공사에 대한 관리책임을 맡을 계약관리책임자는 불안감과 불만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어차피 최저가로 준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경꾼은 최저가 불안감은 감리인력 추가투입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주장만 한다.

최저가제도가 시장에서 어떤 파급 영향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보는 시각도 건설업체들과 구경꾼 사이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 최저가로 낙찰 받은 원도급자는 손실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하도급자들에게 일부를 전가하고 하도급 역시 손실을 근로자들에게 부담시킨다.

손실 부담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손쉽기 때문에 외국인근로자 고용을 늘린다. 구경꾼의 주장은 내국인에게 적정한 임금을 주기 위해서는 적정가로 입찰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훔치지 말고 돈을 벌어 사 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최저가로 무너진 기업보다 살아 있는 기업들이 많음을 내세워 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한다. 국내 최저가낙찰제는 선진국 기준에서 보면 무늬만이지 본질은 아니다. 먼저 법과 제도, 그리고 발주자 역할과 책임면에서 국제기준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발주금액을 기준으로 대상을 정해놓거나 또는 법에서 강제한 경우는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반드시 조건이 붙는다.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사로 한정시켜 놓았다. 한번 입찰에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 입찰자에게 응찰기회를 주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뒤집어보면 응찰자격은 엄격한 사전자격심사기준과 절차에 의해 10개 미만(미국의 경우는 3~4개)으로 제한시키는 게 상식이다. 응찰서를 심도 깊게 평가하기 위해서다.

선진국 어디에도 발주자를 배제시킨 입찰은 없다. 건설업은 공법과 기술, 그리고 가격의 적정성을 동시에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가정한 공법보다 입찰자가 제안한 공법에 우선권을 주기 위해서는 공법의 타당성을 검토할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 공종별 단가 비교는 엑셀식 비교가 가능해도 공법과 기술 평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개별 단가(cost)가 아닌 공사방법별 가격(price) 비교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최저가낙찰제는 분명 입·낙찰 방식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전면 도입이나 전면 폐지 주장보다는 최저가낙찰제가 작동할 수 있는 기반 환경 구축을 먼저 하는 게 순서다.

첫째, 최저가입찰은 시공사의 공법과 기술을 먼저 심의할 발주자의 역량 확보가 우선이다. 철근이나 콘크리트 등 공종별 단가가 아닌 철콘구조물 시공방법과 기술의 타당성을 심의할 수 있는 역량이 먼저다.

둘째, 최저가낙찰제에 적용하는 예산은 계속비로 총액계약방식 적용을 강제해야 한다. 공사계획에 따라 예산이 배분되어야지 예산에 따라 공사를 하는 것은 시공자에게 제경비와 물가상승비만을 부담시키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 발주자는 설계의 완성도를 보장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설계완성도 문제가 40% 이상인 현실에서 이를 시공자가 흡수하기엔 너무 큰 부담이 된다.

넷째, 금액 크기에 따른 최저가적용 의무화 규정은 발주자가 판단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임의화시켜야 한다. 금액이 아닌 발주자 역량과 공사의 속성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다섯째는 최저가로 인한 손실은 원도급자가 떠안도록 해 ‘최저가=손해’라는 인식이 들도록 해야 한다. 원도급자의 손실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보증기관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최저가낙찰제도 적용 확대 유보시한이 내년도로 다가오면서 과거처럼 각종 꼼수가 등장하리라 예상된다. 본질을 기피하려 시간벌기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최저가 주문자가 먼저 기반 환경을 구축하도록 요구하는 게 정도라고 본다.

미국의 공공공사에서 낙찰자 선정 원칙이 ‘선 기술 후 최저가(LPTA)’인 점이나, 영국이 도입한 ‘최고가치낙찰’은 발주자 역량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같다.

발주자 재량과 책임, 그리고 역할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건설은 주문생산방식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제도와 기반환경이 전제조건이다.    /이복남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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