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管中)과 포숙(鮑叔) 이야기는 학창시절부터 수없이 들어서 대부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친구 간의 변함없는 우정을 나타내는 ‘관포지교(管鮑之交)’는 너무나 유명한 사자성어 아니던가? 25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관중과 포숙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관중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평민 출신이고, 포숙은 부유한 명문 집안의 귀공자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둘이서 같이 장사를 하여 관중이 이윤을 더 가져가도, 투자를 잘못하여 실패를 하여도 포숙은 관중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돈독했다.

제 양공의 폭정 치하에서 각자 주군을 달리하면서 둘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제 양공이 공손무지에게 시해당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주군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는데, 관중은 포숙의 주군인 소백에게 화살까지 날리게 된다. 그러나 결국 왕위는 포숙의 주군인 소백이 차지하여 제 환공으로 즉위한다.

승자가 아닌 패자의 위치에 놓인 관중은 목숨이 위태로워졌으나, 오히려 포숙은 관중의 능력과 인물됨을 잘 알기에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제 환공에게 재상 후보로 천거한다. 제 환공은 관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포숙의 간청에 따라 관중에게 재상의 자리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평민 등용을 통한 인재양성과 부국강병책을 펼쳐야 한다는 관중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결국 회맹의 맹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동안 춘추5패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었던 제나라가 이토록 급격하게 성장한 까닭은 군주는 신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권한을 주고 그의 충언을 의심 없이 들어주었으며, 신하는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와 군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관중이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국가의 가장 기본인 민초들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인재의 적재적소 활용으로 탁월한 용병술을 발휘하여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관중은 제갈공명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2대 재상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는 타고난 정치가요, 경제가이며, 혁신가로서 그만한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서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반 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항상 10% 정도 부족한 감이 든다. 정치적 조율, 인사정책, 경제정책, 복지정책 등 무엇 하나 의도한 대로 제대로 가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방향을 잃고 바다 위를 떠도는 일엽편주의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새 정부 출범 시 야심차게 발표한 공약들 중에서 ‘분리발주 제도 법제화’를 통해 건설업계의 기초이면서 영원한 ‘을’인 전문건설인들의 손톱 밑 가시를 뽑아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큰소리치던 호기는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진정 우리에겐 관중 같은 정치인이 없는 것인가? 답답한 마음을 식혀 주려고 하는 건지 굵은 장맛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다.  /김정환 코스카 중앙회 건설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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