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는 독일 출신 유대인 에리히 프롬이 현대사회 인간존재의 문제에 대해 저술한 책의 제목이다. 그는 인간의 생존양식을,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양식’과 자기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는 ‘존재양식’ 두 가지로 구별한다.

“돈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이다”라는 말은 바로 “소유냐 존재냐”라는 추상적이고 무척이나 고단하고 허무한 이분법에서 유발된 면이 있다고 본다. 소비사회와 돈이 지배적인 관념들이 천박한 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최근 이러한 천박성은 TV광고를 장악한 대출업체의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모든 사람에게, 특히 여성 우대, 직장인 우대를 외치며 무차별적으로 스피디(?)한 대출을 권하는 무섭고도 천박한 사회의 일면이 그러하다. 그 광고가 무척 명랑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대출을 부추기고 5분 후에 또 부추길 때 TV를 부수고 싶은 마음과, 저 따위 광고모델로 연명하는 측은함도 왠지 서글프다.

그렇다고 과연 소비사회, 예컨대 시장원리가 돈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원칙일까?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시장은 단순히 돈에 의해서 결정되고, 돈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돈이 그저 중요할 뿐이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생산활동과 교환활동이 유발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과정은 좋건 나쁘건 돈과 상품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과정에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것들의 일정한 정도는 인정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돈과 상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거꾸로 돈과 상품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의 인간도 가능할까. 애당초 이런 관점의 인간 중심은 접근에서 문제가 생긴다.

‘세상의 주인’이 화근인지 모른다. 세상이 뭔 주인이 있을까? 주인이라는 말은 반대편의 노예와 같은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웃기는 말이 아닌가. 세상의 주인은 그저 세상일 것이다. ‘세상’이란 말 자체가 속이 비어 있는 허망한 관념인데도…. 무엇이 주인인 것인가.

인간은 여러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려고 애쓰는 한 존재일 뿐이다. 세상의 주인이니, 아니니 떠들 일이 무엇일까? 돈과 상품이 세상을 만들지는 않으며, 거꾸로 그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로운 인간이 세상을 만들지도 않는다.

이제 이 허무맹랑한 말싸움을 내려놓자. 정치적 이념의 도구로 활용되어 온 자본과 인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유를 실천해 가는 평범한 백성(?)들이 대출업체의 광고에 그다지 흥분하지도 않고, 관념적이고 진저리나는 자본과의 싸움에서도 자유스러울 듯 싶다.  /김용상 코스카 중앙회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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