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방방송 보도가 세종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중견건설사인 M사가 세종시에 시공 중인 아파트가 부실시공이라는 보도가 나간 것이다.

철근이 규정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아직도 이같은 위험천만한 부실시공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감독기관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도 곧바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키로 했다. 시공사도 공사를 중단하고 진상규명에 나섰다. 그러나 기자가 정말 놀란 것은 다른데 있었다. 부실시공이 실수나,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의 고의에 의한 것이라는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용인즉, 철근 하청을 맡은 C사가 “임금이 체불됐다”며 가불금을 요청했으나 M사는 지급을 거절했다. 이후에도 식대체불 등 C사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고, 급기야 5억원이 넘는 임금을 체불했다. 이에 M사는 체불노임을 대위변제해 직불처리한 뒤 C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C사는 수차례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고, M사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지난달 초 철근 부실시공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행복청은 C사가 하도급액 증액을 빌미로 철근배근을 ‘고의로’ 부실시공했다고 밝혔다. 심각한 도덕적 해이이자, 막가파식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수십층 높이로 들어서는 아파트 공사에서 철근 부실시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C사는 공사비를 더 받기 위한 협박무기로 철근을 부실시공했다. 그것도 고의로! 주민 안전을 볼모로 삼은 셈이다. 현재 일부 수분양자들이 ‘계약해지’를 요구하고 있어 자칫 M사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갑’의 ‘을’에 대한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거론돼 왔다. 기본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을의 편에 서서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온 사회가 나섰다. 그 결과, 완전히는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엔 을의 횡포를 호소하는 건설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최근 만난 한 중견건설사 사장이 “요즘 어떠냐”는 기자 질문에 대뜸 “하청업체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말해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부동산경기가 아직은 얼어 있는데다, 발주 물량은 적은 반면, 경쟁은 치열해 힘들다”는 정도의 ‘의례적인’ 답변을 예상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공사가 50~60% 정도 진행되면 ‘못 하겠다’ 나자빠지면서 ‘공사비를 올려 달라’ 고 생떼를 쓴다. 시공 도중에 회사가 없어지거나, 사장이 바뀌어 ‘새로 협상하자’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물론 아직도 을의 횡포에 비해 갑의 횡포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들어 을의 횡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는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기업 역시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성장한다. 더구나 다수의 공정이 얽혀 있는 건설업은 수많은 원청-하청 관계로 굴러간다. 원하청 업체들이 서로 신뢰하며 힘과 지혜를 모을 땐 성공적인 작품이 탄생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만과 이로 인한 갈등이 깊어지면 훌륭한 작품은커녕,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많은 건설사들이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 갑-을 간 횡포가 아닌 갑-을 간 협력과 믿음이 더욱 소중한 때이다.  /김병국 내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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