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벽산건설과 동양건설의 주가가 전날대비 90% 안팎으로 폭락했다. 상장 폐지가 결정돼 정리매매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벽산건설과 동양건설은 300원대에 거래됐다.

문닫는 벽산건설과 동양건설을 지켜보는 주택건설인들의 마음은 착찹하다.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건설업체에 부도공포가 덮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시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공능력 100위권 내 건설사 중 워크아웃이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가 20여개에 육박한다. 당초 100위권 안에 있다가 법정관리 등으로 100위권 밖으로 이탈한 기업도 10여개다.

워크아웃은 업체를 살리기 위한 조치지만 시장에는 ‘부실기업’임을 증명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되레 회생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중반과 같은 주택시장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당분간 주택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항상 음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지도 있다. 고통스런 주택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잘 견뎌만 낸다면 오히려 한국주택건설시장의 체질을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귀기울여볼 만하다.
최근 무너진 업체의 상당수는 과거 호황기 때의 관습을 답습하면서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가 미분양에 묶여서 자금경색이 온 경우도 있고 대규모 자금이 동원되는 프로젝트파이넨싱(PF) 보증을 잘못 섰다가 몰락의 길로 걸은 사례도 있다.

무리하게 최저가로 낙찰받으면서 공사를 하고도 적자를 보기도 했다. 주택건설업이라는 게 원채 큰돈이 오가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리스크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에서는 벗어나기 힘들다.

무너지는 기업이 있으면 피어나는 기업도 있다. 부산 용호동에 69층자리 초고층 아파트를 내놓은 아이에스동서, 세종시에 ‘중흥S-클래스’ 1만여 가구를 짓는 중흥건설 등은 떠오르는 건설사들이다.

호반건설과 반도건설도 주목받는 중견건설사다. 최근 떠오르는 이들 업체의 특징은 안전성 위주의 사업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호반건설의 경우 앞서 분양된 단지들의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흥건설은 수도권시장보다는 비수도권에서 대규모 개발되는 공공택지를 골라 사업을 해 왔다. 경쟁이 치열하고 규제가 많은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 알짜 지역을 노렸다는 얘기다. 어떤 식이든 과거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건설사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형건설사들도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한 현대건설이나 삼성그룹 계열의 삼성엔지니어링 등도 사업성평가나 재무제표를 깐깐히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확히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면 입찰을 포기하고, 생산량 대비 산출량을 정확히 계산하는 등 마치 반도체나 자동차를 만드는 수준에서 공정을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건설사의 체질도 변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부동산 시장 불황만을 탓할 수 없다. 곳간이 빈 정부에 기대기도 어렵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건설사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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