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현명하다. 요즘 새삼 드는 생각이다. 정말 시장이 제일 잘 아는 것 같다. 임대수익에 대한 과세 강화 가능성이 문제가 된 ‘2·26 임대차 선진화 대책’ 이후 정부가 잇따른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내놨는데도 시장 반응이 영 시원찮다. 아니 오히려 냉담하다.

지난 15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 과밀지역 민영주택 소형평형 공급 의무비율 연내 폐지, 주택조합제도 완화 추진 등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지만 아파트값은 계속 내리막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으로 거래 부진이 계속되면서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한 채 값이 1주 전에 비해 최고 1250만원 떨어졌다. 주공2단지와 3단지 일부 면적도 250만원 하락했다. 정부가 지난 2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방침을 내놓았을 때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던 분위기와 영 딴판이다.

이제 정부는 이 같은 현상이 단기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할 때다. 시장을 이대로 방치하면 올 초 애써 살려놓은 부동산 시장 불씨가 재생 불능으로 완전히 사그라질지 모른다. 전문가 그룹의 의견도 대체로 일치했다. 2·26 대책으로 시장이 충격 회복 기능을 많이 상실해 부동산 침체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부동산 관련 한 연구소의 관계자는 “지난 1~2월 두드러지게 거래가 회복됐고, 수도권은 거래량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가격도 상승해 시그널이 좋았는데 임대차 선진화 방안이 나오면서 맥이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학군·계절 이사 수요가 둔해졌기 때문에 지난 1~2월 실적은 정부의 규제 완화책이 효과를 낸 것”이라고 분석한 뒤 “그런데 이렇게 시장이 불꽃을 지피고 있는 상황에서 엉뚱한 정책이 나오니 수요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제도 자체보다는 정책 타이밍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 다른 연구소 관계자는 “선진화 방안이 그렇게 불쑥 나올 게 아니었고, 과세 부분만 지나치게 부각된 측면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한번 내놓은 대책을 슬그머니 집어넣을 수도 없다. 그건 국민이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하는 최악의 수다. 게다가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도 결코 아니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부동산 거래, 매매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임대차 선진화 방안의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격하지만 금융규제 완화도 그중의 하나로 거론된다. 정부나 학계는 금융 규제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준다고 보지 않지만 시장에 참여한 당사자는 중압감을 느낀다. 그런 게 규제다.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해 보인다.

다시 서승환 장관 이야기를 해보자. 서 장관은 지난달 10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의 한 부분인 집주인 과세 문제 때문에 주택시장 회복세가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연 그런가. 시장이 답하고 있다. “아니다”라고.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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